<'김어준빠'와 '강용석빠'의 불편한 공통점은?>(김성희, 2월 24일, 프레시안) 글을 읽었다. 이 글을 쓴 북 칼럼니스트 김성희에 따르면 '김어준빠'인 나는 '집단 극단화'에 함몰된 인간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넘쳐나는 정보'로 인해 생겨난 '정보의 쓰레기'를 양산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김성희 덕분에 나는 어느새 '강용석빠'와 같은 수준의 인간이 되었다. 서로 양 극단에 서 있을 뿐.
욕설도 이런 욕설이 없다. 이런 불쾌하기 짝이 없는 욕설을 언론을 이용해 해대다니. 가만히 있기에 너무 불편하다. 감히 김어준과 강용석을 같은 도마에 올려놓고 마구 썰어서는 같은 냄비에 넣고 끓여버리다니. 이런 무식하고도 어처구니 없는 단순화를 죽고 나서도 자손대대로 길이 남을 '글'로서 남기다니. 참으로 용감한 사람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하버드대학 로스쿨이란 직위를 아무리 부러워한다고 해도 이 책의 권위에 기대서 이렇게나 용감해 질 수 있다니.
한편으로는 내가 나름의 논리를 전개해서 이를 반박해봤자, 계속 말장난처럼 돌고 돌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사람의 글을 읽고 황당해 하는 것처럼, 이 사람에게도 나의 논리는 황당한 괘변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가 왜 김어준빠인지 그리고 나를 강용석빠과 같이 엮은 것이 나에게는 왜 용인하기 힘든 무례한 욕설인지, 다른 방법으로라도 설명해야 할 강한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고 내 생각도 정리해보기로 했다.
김어준이 이 시대 대한민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은 <나꼼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김어준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져서, 이 사람이 쓴 책과 글, 한겨레의 뉴욕타임스 방송, 인터뷰 기사들을 뒤져서 읽고, 동영상을 다운 받아 보게 된 것은 <나꼼수> 때문이다. 그 전에도 딴지일보가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딴지일보 사이트에 구경 가 보기는 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이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는 수고 같은 건 하지 않았고, 딴지일보의 애독자도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김어준빠가 된 이유를 <나꼼수>와 관련해서 얘기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자료를 찾아본 후, 이 사람이 왜 '딴지일보'라는 걸 만들었는지 대강 짐작은 하고 있지만, 아직 글로 쓸 만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왜 이렇게 <나꼼수> 빠, 김어준빠가 되었나? 간단하게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어떤 사물 혹은 사건을 보고 가지게 되는 의견이나 감정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면 꽃 한송이를 보았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나 의견은 다음과 같이 폭 넓은 스펙트럼이 가능할 것이다.
1. 참 예쁘다 2. 예쁜 것 같다 3. 뭐, 괜찮네 4. 뭐가 예쁘다는 거야? 5. 못 생겼구만 6. 쓰레기다
내가 비록 (1)번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6)번으로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 "취향이 참 다르군" 정도는 말할 수 있겠지만. 다양한 개인의 감성적 의견에 대해서 잘못이네, 틀렸네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한심하게 혹은 볼썽사납게 보일 수 있다. 이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적 감성 표현에 대해서는 함부로 "선"을 긋는 것은 별로 장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로 서로 감정까지 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어떤가? 꽃 한송이가 있는데, 이것을 가르키면서 사람들 사이에 아래와 같은 다양한 의견 표명이 있을 수 있다.
(1) 이것은 꽃이다. (2) 꽃일걸? (3) 꽃일지도 몰라. (4) 꽃 아니었어? (5) 꽃이 아닌 것 같아. (6) 뱀일지도 몰라 (7) 뱀일걸? (8) 뱀 아니었어? (9) 이것은 뱀이다.
이번에도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용인인할 수 있는 정도의 한계선이 중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선을 넘어가면 내 입장에서는 '거짓말'이 되고, 상대방의 의견은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확신하는 사람들은 (1)번과 (7)번으로 말하겠지만, 확실히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의견은 (2)번과 (6)번까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면 (1)번과 (7)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를 내놓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이 맞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이 혼재한 상태로 그냥 있어도 괜찮은 경우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많은 '선택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잘 모르는 사안이라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결정의 순간이 오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진실'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서로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대립하는 의견이 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이들이 내놓는 '정보'와 '논리'를 보고 결정할 수 밖에 없다.
서로 가지고 있는 정보와 알고 있는 것을 다 공개했다면, 꽃을 뱀이라고 주장했던 사람이라도, 왜 이런 주장을 했는지 함께 논의가 가능하고, 적어도 뭔가 착각을 했구나. 실수였구나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꽃을 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자신의 의견이 틀렸다는 증거를 숨기고 있다면 어떤가?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비난 받아 마땅하다. 특히 자신의 특정한 이익을 위해서 그랬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보의 공개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신의 의견을 '정보의 공개'가 아닌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어떤가. 상황은 심각해진다. 꽃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 즉 (2)번부터 (6)번까지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실'이다. 누가 더 힘이 센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놓는 증거나 논리의 전개가 부실하다는 인상을 주게 되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외면당하게 된다. 반짝 쇼로 잠깐 관심은 끌 수 있겠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 공개적인 논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불쑥불쑥 주먹부터 휘두르는 것은 거부감을 느끼게 만든다. 심한 경우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노예가 아니라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게는 '권위'라는 편견 때문에, 사람들은 무슨 대학교수, 무슨 분야 전문가, 혹은 국가기관의 발표 이런 것들의 권위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딱히 크게 잘못 됐다고 비난하기는 힘들다. '권위'라는 것이 '진실'임을 확인하는데 필요한 많은 중간 과정을 생략해 주는 편리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 그런 '권위'는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로부터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권위를 가진 이의 말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기고, '힘'과 '폭력'만 앞세워서 자신의 의견을 따르라고 강요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노예가 아닌 이상 저항할 수 밖에 없다. 권위는 무너진다. 꽃을 보고 긴가민가 하던 사람들도 대부분 (5)번부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동의하기가 찝찝해진다. 성격 좋은 사람도 (6)번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대놓고 동의하기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나꼼수>는 잡놈 방송을 표방하면서, 내세우는 '권위' 하나없이, 맨 땅, 맨 몸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나꼼수> 발가락 수준이라도 따라갈 수 있는 언론이 우리 사회에 있는가? <나꼼수>, 김어준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적인 지지는 여기에 있다. 이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들을 사랑하고 귀중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떤가. <나꼼수> 방송을 듣고,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 뭔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뭐야 경박하게"하며 싫어했을 수도 있고, "고놈들 욕 한번 시원하게 하네" 하면서 좋아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잡놈들이라며 마구 떠들어 대는 것 같아서 처음엔 좀 거슬렸지만, 방송을 바로 끄지 못하고 끝까지 경청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방송을 처음 듣고는 "야, 이거 뭐야. 대박인데?"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보다 <나꼼수> 방송의" 내용" 자체가 불편했을 수도 있다.
김성희, 당신에게 있어 <나꼼수>와 김어준은 어떤 존재인가? 사람들을 막 웃겨서 정신줄을 빼놓고는, 선동해서 꽃을 가르키며 뱀이라고 말하도록 몰아가는 존재로 보이는가? 당신은 <나꼼수> 방송의 내용이 불편한가? 진실을 말하는 것 같아서 불편한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아서 불편한가. 강용석과 같이 묶은 것으로 보아서는 <나꼼수>, 김어준도 거짓말을 한다는 의미이다. 남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관련된 의료 정보를 몰래 빼내서는 그것도 꽃을 뱀이라고 막 떠들면서 온갖 주접을 떨다가 거짓말이 들통나서 개망신 당한 강용석이 당신 눈에는 김어준과 똑같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고백으로 이해된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우리 사회에서 권력의 폭력에 쫄지 않고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알린 이는 <나꼼수>, 김어준 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유일하게 "진실"을 얘기해 준 이는 <나꼼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꽃을 뱀이라고 하는 이명박 정권의 거짓말을 아니다라고 우리를 대신해서 말해준 이는 <나꼼수>, 김어준 밖에 없었다. 불법적인 국가의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목숨 걸어야 가능하다. 나름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 함부로 떠들 수는 없는 것이란 말이다. 검찰이, 조중동이 아무리 뒤에서 먼지를 털어도 꿀릴게 없을 정도로 당당하게 살아 왔어야 가능하단 말이다. 잡놈 방송을 표방한 <나꼼수>가 절대로 '허경영 각하'의 코미디로 머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물며 허경영 각하의 코미디보다도 못한 정치적 목적을 위한 강용석의 거짓말이라는 만용과 같이 묶어 버리다니.
<나꼼수>의 폭발적인 인기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진실'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심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거짓말이 그만큼 횡행하고 있다는 말이다. 거짓말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것에 너무나 질려버렸다는 말이다. 이들의 '진실'을 갈구하는 갈증을 용감하게 풀어준 유일한 존재이다. 진정한 '언론'의 역할을 하는 이가 현재까지 우리 사회에 <나꼼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최근에서야 해직기자와 파업 기자들을 중심으로 '진실'을 얘기하기 시작하고 있을 뿐이다.
<나꼼수>, 김어준을 강용석과 구별 못하는 것을 보니 김성희, 당신과 나의 이 골 깊은 의견 차이는 현재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인식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면서 군소언론으로 전락하고 있는 언론은 조중동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는 매체'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고 한탄하고 있다. 조중동은 한번도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는 매체'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진정으로 모르는 것인가.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인가. 조작, 왜곡, 선동의 신공을 자랑하며 정권, 권력의 나팔수였던 조중둥의 몰락을 이렇게 대놓고 슬퍼하다니. 당신은 너무나 용감하다.
내가 김어준빠인 이유와 나를 강용석빠와 같이 묶는 무례한 욕설에 역한 불쾌감을 느낀 이유를 설명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김어준빠'와 '강용석빠'를 함께 묶어서 냄비에 쳐넣고 끓일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당신의 그 무모한 용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내갠 너무나 무식하고 용감해서 잔인한 당신께 이 글을 바친다.
이제는 이 사건을 "누군가 고의로 했느냐, 실수로 했느냐. 누가 그런 결정을 했느냐, 왜 했을까. " 그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나 같은 컴맹들에게는 자꾸 기술적인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것 별로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아직도 혼란스러워할 컴맹들을 위해서 이 글을 올린다.
아래 글은 <마지막 세번째 동영상 김기창 교수 발언> 그대로 워딩한 것임
" ...결국은 아무런 트래픽이 디도스 방지 장치까지 들어오지 못했다. 그런 것이 일치된 기술보고서의 결론입니다. 유혼옥 사무관님, 물론 여러 유식한 말씀으로 뭐.. 이런 말씀하셨는데, 뭐, 쉽게 얘기하면 그겁니다.
7시 직전에 두개 잘랐는데, 그 다음에는 양쪽 라우트하고, 뭐, 이런 교신장비가 막 엉망진창인 행태를 보여가지고, 왜 그런 행태를 보였는지는 모르고, 그래서 결국 아무 트래픽도 못 들어 왔다. 그런 거거든요.디도스는 처음부터, 7시 이후로는 이슈도 아닌거죠.
그렇다면, 그것을 밝히는데 필요한 , 각종 라우트와 관련된 로그 기록을 좀 투명하게 공개해 주시면 좋겠다. 이런 제 말씀드리는 거고요.
그 다음 특검과 관련해서는, 지금 경찰, 검찰 조사가 다 끝난 부분에 대해서 특별 검사가 새로 이렇게 좀 더 보겠다는 거니까, 특검의 조사 범위가 디도스로 국한된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해요. 그게, 검찰 조사한 게 디도스만 디립따 판 거니까. 그게 제대로 됐나 이걸 조사하는 거고.
지금 이 LG 엔시스 보고서에 의해 드러난 부분은 7시 이후, 이거 자른 이후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른 결정을 누가 했는지. 어떤 프로세스(과정)을 통해서 됐는지, 그 다음 그것이 타당한 것인지, 과실이 있는건지, 이런 부분에 대한 수사는 전혀 안된 것이지요. 그래서 경찰 수사부터 새로 그 부분에 대해서 시작을 하고, 검찰이 만족스럽게 하면, 그 부분은 특검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라인 세개 쓰다가 트래픽 많이 들어온다고 두개 자르는, 그런 결정을 하셔 놓고. 이게 비상상태에서 긴박한 최후의 조치다라고 하셨는데, 그 뒤에 한시간 반은 어떻게 설명하실건지. 그런 부분에 대한 수사는 이제 새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정도, 생각 말씀드립니다.
사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 않아도 우리 눈 앞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사실임을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 노컷뉴스, 시사IN 게다가 오마이뉴스까지, 소위 진보언론으로 일컬어지고 있던 이 언론들이 10.26 부정선거에 대해서 아직도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처음 <나꼼수> 비키니 사건 때 이들이 조중동과 함께 달려들어 <나꼼수>에게 무작정 돌팔매질을 하도록 부추기는 행태를 보일 때만 해도 좀 이상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한편으로는 좀 작작하지 혹은 바보들, 또 말린다. 요정도의 섭섭합, 안타까움 혹은 한심함을 느끼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드러난 이들의 실체는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고 있다. 참여연대가 정보공개청구권을 행사해서 선관위로부터 얻어낸 LG 엔시스의 보고서를 근거로, <나꼼수>가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 왔던 사실, 즉 '선관위 디도스 공격'은 '10.26 부정선거'를 덮기 위한 페인트 모션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이들은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들 소위 진보 언론이 <나꼼수>라는 파격적인 새로운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아님이 확실해졌다. 오히려 <나꼼수>를 '적'으로 간주하고 왕따 시켜 죽여버리겠다고 다 같이 단합이라도 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상은 '10.26 부정선거' 사건이 국가 존립의 근간인 민주주의를 흔드는 '선거'와 '선관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범죄와 관련한 문제라는 점에 이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그리고 그 범죄행위로 인해 수혜를 받았던(비록 실패했지만) 사람이 다시 총선 예비후보자로 나섰고, 모든 언론과 국가권력이 이 후보를 부활시키기 위해서 총동원되고 있다.
현재 소위 '진보' 언론의 수준이 어떤지는 경향의 기획에디터, 이중근이 쓴 <난장에도 규칙은 있다>(2월 22일자, 경향)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글의 핵심은 ' 나 경향의 중견기자. 나 17년차 선관위 전산실의 산 증인 유훈옥 사무관과 오랜 친분이 있는 사이. 이 분이 요즘 <나꼼수> 때문에 상당히 피곤해 하고 있음. <나꼼수>는 합리적인 논의가 진행되는 '담론(public sphere)'이 아닌 아무렇게나 떠들어도 규제가 미치지 않는 난장(wild publics)에 불과한 것. 하지만 <나꼼수>가 아무리 난장이라도 규칙은 지켜라'이다. 이 글을 읽어보면 누구나 이렇게 느끼게 된다. 한심하다. 기자로서 최소한의 수준도 갖추진 못한 선관위 감싸기 변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논거나 논리의 전개 이런 건 없다. 자신이 주장하는 그 "규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음을 혼자만 모르는 것 같다. 경향의 중견 기자라는 사람의 이 글은 한 IT 전문가가 쓴 <나꼼수를 비판하는 경향과 언론에 대한 충고>와 비교되면서 체면이 더욱 구겨졌다.
가히 요즘은 '진보'의 커밍아웃 시대라 할만하다.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진보 지식인'으로 그리고 '진보 언론' 으로 대접받던 이들의 실체, 생얼이 적나라하게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 덕분에 우리 사회는 지금 '선거' 뿐만 아니라, 최근에 한참 커밍아웃하고 있는 이들 '진보' 지식인과 '진보' 언론과의 한판 전투도 함께 치르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진중권과 대중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이건, 이들의 논쟁에 별로 관심없던 사람이건, 이제는 '진중권'표 '진보'의 생얼에는 다들 질려버린 분위기이다. "그냥 혼자 떠들게 냅둬. 원래 그래" 라는 무의식적인 결론으로 모아진 것 같다. 그런데 이 사람이 대표하는 진보 지식인의 생얼 보다 훨씬 더 어이없고 화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진보 언론의 커밍아웃이 아닌가 싶다. 이들의 커밍아웃은 우리를 많이도 혼란스럽게 했을 뿐만 아니라, 많이 아프게 한다. 더 큰 문제는 같은 뿌리라는 것.
이들이 몇 백년전 서구의 산업사회에 기초한 한물간 이론을 부여잡고, 그 틀에 맞지 않는 자신의 조국을 후진국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심한 '열등감'에 사로 잡힌 식민지 출신 '먹물'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들의 방향감각 상실한 총구의 방향이 자신들의 적이었던 권력의 불법과 조중동에 봉사하는 시녀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을 자신들이 아직도 모를리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태도는 비록 자신들의 <나꼼수> 죽이기가 그런 결과를 낳는다 해도, 자신들이 생각하는 "더 중요한 것"을 위해서는 그 정도 결과 쯤은 감수할 수 있다는 의사표시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확고하고도 자신감에 찬 태도는 우리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턴가 <나꼼수>와 <나꼼수>를 지지하는 "대중"이 한편으로 그리고 소위 '진보' 지식인과 언론이 조중동 그리고 불법 독재권력과 한편이 되어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1. 국가와 사회의 이분법과 수직 구조
경향 기획에디터의 한심한 글말고, <나꼼수> 죽이기에 대해서 나름의 논리적 근거를 내세우고 있는 글들이 요즘에는 조중동이 아닌 이들 진보 언론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 이들의 비판 논리로는 크게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사회(사적인 영역)과 국가(공적인 영역)의 분리" 그리고 "담론과 난장의 분리"이다.
첫째는 경향에서 2월 14일자 기사로 먼저 올라왔다. 1월 31일 있었던 한국언론정보학회 기획연구과제 발표회에서 이기형 경희대 교수(언론학)가 발표한 것으로,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public sphere)' 과 대비되는 "난장(wild publics)" 개념이다. '공론장(public sphere)'은 "무엇보다 합리적인 대담과 논의 교환이 그 바탕"이다. 이런 '공론장'이 상대적으로 사회 엘리트층이나 우월집단만을 선호하기 때문에, 지배 담론의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여성이나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대안과 보완의 형태가 바로 '난장(wild publics)'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나꼼수>가" 정치시사 관련 콘텐트가 난장의 역할을 견인하는 매우 새롭고 흥미로운 사례"라며, "떠들썩한 선술집과 저잣거리에서 발현되는 목청 크고 주관적 체험이 중심이 된 목소리들이 다양하고 분산된 숙의 과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이 '난장(wild publics)'라고 했다.
두번째는 '한겨레 21'에서 2월 22일자로 올라 온 <陳의 전쟁>이 있다. 이 칼럼은 한겨레 21의 표지 스토리였고, 진중권의 얼굴이 커버를 장식하고 있다. 이 글의 논리 구조는 "사회(사적인 영역)와 국가(정치적인 영역)의 분리"라는 이론에 기초해 있다. 이 글에서는 진중권의 나꼼수 비판을 통해 이렇게 주장한다. <나꼼수>가 머물러야 할 곳은 정치영역이 아니다. <나꼼수>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 즉 사적 영역에서의 '놀이' 혹은 "오락프로그램"이라는 제 "몫"을 찾아주기 위해서 "비이성적인 대중"과 전투도 불사"하는 진중권은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자 "전사"이다. 그리고 이런 역할이 바로 "지식인"의 임무이다. 이 글의 지은이인 이세영이 볼 때 진중권은 '타락한 사회'에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시대의 반영웅, 진정한 의미의 '문제적 개인'"이다. 여기서 말한 '타락한 사회'는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야 할 <나꼼수>가 정치적 구호를 외치며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대중을 선동해서 이들이 정치적 영역으로 진입한 사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제 898호 2012.02.20 문제적 인간
진중권의 전쟁
<출처 : 한겨레 21>
(1) 국가(정치 영역)과 사회(사적인 영역)의 분리
이 두가지 논리의 공통적인 특징은 서구에서 근대 자본주의 국가가 탄생하면서 상업.산업자본가로 성장한 '부르주아지'가 당시 정치 권력을 장악하면서 만들어 낸 이론,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첫번째가 '국가(정치 영역)과 사회(사적 영역)의 이분법'이다. 당시 의회를 장악한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은 재산과 교육을 받은 교양있는 '시민'이고, 나머지는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어떤 존재(대중) 였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왕(국가)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래로부터 거세지고 있는 산업노동자들(대중)의 정치적 목소리를 억압하기 위한 이론구조를 만들어 냈다.
이들은 '천부적인 인권'이 인정되고, 국가권력이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혹은 침해하더라도 반드시 자신들이 만든 '법'에 근거하여야 한다는 원리가 작동하는 사회(사적인 영역)을 설정해 놓고, 국가(공적인 영역)와 분리시켰다. 그리고 국가권력을 이러한 목적에 봉사하기 위해서 '법치주의'와 '3권 분립' 그리고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리로 통제되는 통치구조를 설계했다. 이것이 근대 자본주의 국가, 자유민주주의 헌법이론의 기본 골격이기도 하다. 이 이론이 함의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는 이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정치 영역에는 아무나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당시 정치권력을 장악한 부르지아지가 보기에는 '시민(부르주아지)'이 아닌 대중(당시 정치적 각성을 하면서 조직을 만들어 뭉친 산업노동자들), 즉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존재가 이 정치영역에 진입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쟁을 통한 국가의사 결정이라는 신성한 '의회' 정치 원리를 파괴하고, 물 흐려 놓는 매우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 국가가 탄생하고,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던 마르크스 혁명을 거친 후, 유럽에는 국가권력의 원천이 '신'이나 '왕'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민주주의'가 당연한 원리로 자리 잡았다. 이제 '민주주의'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기본 원리로 뿌리 내렸기 때문에,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이것을 '선거'만 하면 민주주의는 완성된다고 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로 형골화시켰다. 따라서 "대중 선동"이 중요한 정치기술로 등장한다.
진중권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쇼펜하우어가 쓴 <토론의 38가지 법칙>에 나오는 논쟁의 '검객' 이 되기 위한 기술의 핵심은 이것이다. 즉, 실제로 수준 높은 사람에게 논리적으로 밀리더라도 "철저하게 무식한 대중" 앞에서 "이기는 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토론에서 이기려면 논리가 아니라 '사기'를 잘 쳐야" 한다. 도저히 안될 땐 "인신모독"도 좋은 방법이다.
"상대방은 전문가이지만 청중들은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므로 (말도 안되는 이의제기를 하면) 청중들의 눈으로 볼 때 상대방이 패배한 것이 된다. 더군다나 나의 이의 제기가 상대방의 주장을 우스꽝스럽게 만들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청중들은 금새 웃음을 터뜨리게 될 것이고, 청중들을 쉽게 우리 편으로 끌어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 토론의 법칙 p.73) - 김휘영 <진중권과 히틀러의 특이한 유사성> 중 인용
이것은 결국 2급 찌라시로 전락한 소위 진보 언론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조중동의 프로패셔널한 고급 선동 기술임을 이 인용문을 읽고 있는 분들은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진중권은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진보 지식인으로 대접받던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낡은 사고 틀과 대중을 바라보는 오만한 시선은 그 옛날 서구 사회에서 근대 자본주의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가 탄생할 당시의 낡은 이론과 사고 방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집착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진보 언론이 보이는 이 경악할만한 태도에 대한 자신들의 변명도 이와 괘를 같이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변명은 참으로 찌질하다 아니할 수 없다.
식민지 그리고 군사독재를 거쳐 이제는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와 금융자본주의가 장악한 후발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보수꼴통으로 지칭되는 이들 기득권 세력이 현재 '진보'와의 기묘한 동거를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은 소위 '진보' 지식인들의 이러한 눈먼 자만심과 열등감에 이미 내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진보 언론의 자기 변명을 통해서 이들의 한계와 그 찌질한 종말을 직접 확인하고 있다.
(2) "철저하게 무식한 대중"을 초월한 존재, "지식인"
두번째 특징은 이들은 스스로를 "철저하게 무식한 대중"을 초월한 고차원적인 별개의 존재, 즉 "지식인" 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시민'이고, '대중'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고, 야만적이고, 선동에 힙쓸려서 언제든 '暴民'으로 변할 수 있는 위험한 그 무엇이다. 이들의 조직화와 단체 행동이 용인될 수 있는 것은 2002년 붉은 악마와 2008년 촛불과 같이 '사회적 영역'에서만 머물러 있을 때이다. 그러니 자기의 본분을 잊고 설쳐대는 <나꼼수>를 무시하고, 계도하는 것은 자신들, 즉 "지식인"의 의무이다. 이것이 이들의 논리가 함의하고 있는, 하고 싶은 말이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이들의 이분법적 사고 틀에 내제한 '인간'에 대한 이중적 개념이다. 이들의 '인간'에 대한 개념 자체도 또한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있어 '인간'은 평등한 존재가 아니다. '시민(지식인)'과 그 외의 존재, 즉 '대중'이 대척점에 서서 서로 대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와 이 이데올로기에 내제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에 내제된 이러한 이중적 모순은 매우 중요하다. 국내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작은 정부'나 '보이지 않는 손'이 통제하는 '자유로운 경쟁이 지배하는 시장'이라는 논리가 권력의 폭력을 감추는 역할을 하는 결과를 낳는 토양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국내적으로는 한 국가(nation) 내에서 '두 국민(nation)' 정책을 가능하게 했다. 국제적으로는 선진자본주의 국가, 즉 영국과 (세계 제2차 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앞장서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세워 전 세계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지역 사회를 초토화시키는 내정간섭을 가능하게 했다.
현재 우리는 이러한 낡아빠지고 모순된 이론을 신주단지 모시듯 부여잡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 왔던 소위 '진보' 지식인들과 소위 '진보' 언론인의 그 한계와 그 끝을 보고 있다. 일제시대 나라를 팔아 먹었던 역적들과 군사 독재정권 그리고 대자본에 빌어 붙어 부를 축적했던 세력들, 그리고 현재 그 정점에 있는 이명박 독재 정권과 야합한 이들 '진보' 언론의 변명은 그래서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심하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더 위험한 존재이다.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된다.
2. 수평적 연대로서의 <나꼼수>
이들이 현재와 같은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를 향해 겨누고 있는 총구를 보면서, 다시금 <나꼼수>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우리가 왜 반드시 지켜내야만 하는지 그 이유가 더 명백해진 것 같다. 한동안 이들 진보 언론의 행태에 경악하고 혼란스러워 하면서 고민했던 내가 도달한 결론은 <나꼼수> 덕분에 드러난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명심하자. 우리 사회는 현재 금융자본주의 시대가 잉태한 21세기형 신종 나치 독재정권 (국가권력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형골화시키면서 폭력으로 사회의 숨구멍을 막고 장악해 버리는) 에 맞서 싸우면서, 이들과 야합해서 봉사하고 있는 소위 '진보' 지식인과 '진보' 언론과 대치하고 있다. 이제는 당황하거나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감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저 곳에서 계속 저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
작금의 상황은 참으로 우리를 피곤하게 만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나꼼수>와 함께 '대중'의 일원으로 서 있는 나는 돈이 많아도, 권력이 있어도 사람이 얼마나 찌질해 질 수 있는지 매일 매일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저들과 같은 수준의 찌질이로 전락할 의사가 손톱 만큼도 없다. 개인으로서의 나는 덜렁거리고 실수도 많은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나름의 불완전함을 가지고 있겠지만, 대중의 한 일원으로 우리는 서로를 도와주고, 스스로를 보완해 나가면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직접 체험하고 있다. <나꼼수>와 함께 하면서 '대중'의 '수평적 연대'의 긍정적 가능성과 그 잠재력을 나는 오늘도 즐기고 있다. 참으로 짜릿하고도 행복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한바탕 소동으로 끝난 2월 20일 한미군사훈련의 의미에 대해서 어제 살펴보았다. 제목은 <한미군사훈련 소동? 새가 되어버린 너!> 글을 올린 후 내 예측이 맞을까 지켜보자 싶었는데, 반응이 참 빨리도 온다. 바로 한미 FTA 발효일을 발표한다. 내 귀에는 마치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행님아, 보그래이, 내는 아직도 행님한테 줄 게 있거등, 내는 아직 행님 사랑하거든!" "북한 버리고 나한테 돌아와~ 돌아와~." 그리고 오늘(22일) 취임 4주년 기념 대통령특별기자회견을 했다.
그래서 20일에 있었던 군사훈련 소동은 막판에 몰린 국내 정세를 한방에 뒤집어 보고자 계획했으나, 행님들이 허락해주지 않아서 불발된 것이라는 나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오늘 국방부 장관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4월 15일 이후 북한의 도발이 예상된다"고. 웃음이 나왔다. 왜 북한이 2월 20일 도발하려다 안하고, 4월 15일 이후에 하기로 했을까요? 20일날 한방 크게 터뜨려 보려고 시끌벅적 광고하고 분위기 띄웠는데, - 행님들한테 버림 받아서 - 실패하고, 한동안은 북한을 이용해서 짭짤하게 사기치는 짓거리를 하지 못하게 됐다는 슬픈 고백으로 들린다. 내 귀에는. 어쨌거나 이렇게 야심차게 준비했던 한방은 링위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끝났고, 결국 2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북미 고위급 회담만 쳐다봐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어제 올린 글을 쓰기 위해서 자료를 찾던 중 2010년 북풍 사건을 핑계로 이명박이 NLL과 MDL이 중첩되는 예민한 지역에 군사력을 증가시키면서 한반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차하면 북한으로 쳐들어가서 국내 정세도 한번에 뒤집고, 자신이 남북통일을 달성한 역사적 대통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요리조리 찔러보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염려된다. 오늘 특별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이 갈등을 조장해서 선거에 영향을 주려한다"며, 4강 외교와 '핵안보정상위'를 강조한다. "국제테러"의 손에 핵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국제적 협력을 통해서 국제규범을 만들려고 한다는 소리에 자심감이 묻어나온다. 미국을 등에 업고, 2010년 천암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정치적으로 잘 이용해 먹은 걸 앞으로도 계속 재활용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2011년 12월 31일자로 이코노미스에 실렸던 "North Korea after Kim Jong IL : We need to talk about him" 을 찬양한 조갑제 선생의 글이 인터넷에 도배된 것을 보고 의아했었는데, 이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도 알 것 같다. 이렇게 선동질 해서 남한 사람들을 어디로 몰아가고 있는건지. 이 위험한 찌라시, 이코노미스트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북한과 전쟁하면, 남한의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북한을 한 칼에 해치우고 우리는 승리의 축배를 들 것 같은가? 전쟁 나면 다 죽는다!
어제 자료를 찾다가 소위 진보 언론이라는 것들이 군사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둥의 헛소리만 지껄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또 충격 받았다. 요즘은 이 소위 '진보'들 때문에 충격의 연속이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떠들어 대는 것인지, 허참. 다행히 오늘 주간지 시사IN에서 좋은 기사를 발견했다. 2월 25일자(제232호)로 나온 <전투기, 이명박 최후의 전투>이다. 사업 규모가 자그만치 8조 3000억원이다. 한마디로 또 뒤에서 나라 팔아 먹고 있는 '각하의 전투기 사업'을 자세히 파헤쳤다. 임기 말 끝까지 도장을 찍어서, 다음 정권에서 번복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낯익은 불도저이다. 경제가 군수산업에 기초한 미국이 국방예산을 삭감하면서 이로 인해 발생되는 대량 실업사태를 대신 해결해주시는 자진 셀프 쓰레기통 프로젝트라 아니할 수 없다. 막아야 한다. 반드시!
인간 오바마와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으로 전쟁을 통해서 경제를 지탱하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통령으로서의 오바마는 얼마나 다를까? 미국 자유주의의 상징인 케네디가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기 위해 남미에서 저질렀던 게릴라전의 실상을 읽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오바마는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까. 아무리 지 나라 팔아 먹으면서 예쁜 짓을 해대도, 얼마 못가 쫓겨날 독재자의 뒷배나 봐주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기 바란다.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저질렀던 깡패 국가 미국의 행패는 한반도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줘야 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노예근성에 찌든 사기꾼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오바마한테도 결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없다.
20일에는 이명박이 "독도 일본 땅 표기 기다려달라"는 발언이 확인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나는 정말 이 사람의 정체가 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가권력을 자신과 측근의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해 먹으면서, 우리나라를 팔아 먹고 있다. 이런 걸 '형골화'라고 하지 않는가. 민주주의도 껍질만 남기고 홀라당. 법치주의도 껍질만 남기고 홀라당. 우리나라를 빈 껍데기로 만들고, 속만 아주 홀라당 다 빼먹는다. 이건 식민지 통치자나 하는 짓아닌가.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루 빨리 저 사람의 손에서 도장을 뺏어와야 한다. 지금 내 머리로는 이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할 말이 없다.
또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선거가 다가오니, 항상 그랬던 것처럼, 북풍이 올거라는 건 예상했었다. 어제도 참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이번엔 유독 걱정이 많이 됐다. 막판 구석에 몰릴 데까지 몰린 이명박과 여당이 무슨 짓까지 저지를지 염려됐기 때문이다. 하도 호연지기가 투철하시고 성실하신 분들이라. 하루 종일 뉴스를 지켜봐야 했다. "군해상 사격훈련 종료...북한 이상징후 없어". 끝났다. 다행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는 계속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부터 4월까지 예정된 주요 한미군사훈련이 자그만치 5개다. 총선이 4월 11일인데.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끌려다닐거냐. 내가 이러니 자초지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불안감은 얼마나 클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휘둘리면서, 뉴스만 쳐다보고 있을 생각을 하니 너무 끔찍했다. 그래서 이것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좀 뒤져보기로 했다. 국민을 공부하게 만드는 정말 훌륭한 정부다.
먼저 어제 있었던 소동에 관련한 기사를 보자. 19일자로 한겨레는 "북 서해 사격훈련 땐 무자비한 대응타격"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조선 서해 우리측 영해수역에 대한 군사적 도발이 시작되고, 우리 영해에 단 한 개의 수주(물기둥)가 감시되면 그 즉시 우리군대의 무자비한 대응타격이 개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월 20일, 북한은 예정된 한미군사훈련에 대해서 "20일 오전 9시까지 안전지대로 대피하라"고 공개적으로 "위협"했다.( 경향, 2월 20일자). 이렇게 민간인에게 대피하라고 "직접" 통고한 것은 처음이다. 무섭다. 그러니 하루 종일 불안한 마음으로 뉴스를 지켜볼 수 밖에.
그럼 이번에는 왜 이렇게 조용하게 끝났을까. 북한은 왜 무자비한 대응타격을 하지 않았지? 그냥 단순히 남한에게 겁주기 위해서? 여태까지 일어난 사건의 양상으로 봐서는 북한이 위협만 하다 끝낸 것이 아니다. 남한이 뭔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대응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북한의 행위 양상은 단순하다.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에 북한이 뭔가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한이 뭔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히 끝날 수 있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인지 좀 알아야겠다.
천안함 사건은 논외로 하자. 너무 말도 안되는 것임을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이 사건에 대한 정부의 거짓말과 횡설수설은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웃음거리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그리고 바보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좀 찝찝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연평도 포격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한 자료를 다시 꺼내 확인해봤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Jim Beal이 쓴 글 "Theatre of War and Prospects for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on the Anniversary of the Yeonpyeong Incident (연평도 사건 1주년을 맞아하여 생각해 본 한반도 전쟁과 평화에 대한 전망)이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리고 동북아의 문 이름으로 올라 온 "3차 북미 고위급 회담과 MB의 실종"이라는 글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감사드린다.
연평도 사건은 NLL(Nothern Limit Line : 북방한계선)과 MDL(Military Demarcation Line : 군사분계선)에 대한 남한과 북한의 입장차가 그 배경이다. NLL은 1953년 끝난 6.25 전쟁 후, 헨리 키싱저와 같은 미국인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설정되었다. 당시 이승만은 미국이 전쟁을 계속해서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남북 통일을 달성하기 원했기 때문에, 이승만이 다시 싸움을 일으킬까봐 일방적으로 NLL을 설정하고서는 전쟁을 종료시킨 것이다.
북한이 이 NLL을 받아들이지 않는 건 당연하다. 법적인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육지에서의 군사분계선을 해상으로 확장한 것도 아니고, 북쪽으로 급격하게 치우쳐서 올라가서 설정되었기 때문에, 해주로 가는 길목을 막고, 풍부한 게 어장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강경한 친미 단체인 국제위기관리기구(International Crisis Group)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NLL을 대신해서, 북한과 남한 양측이 둘 다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분계선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 : 조선일보 >
<출처 : 경향일보 > * 이런 MDL을 그려 놓다니, 한심한 경향 ㅜ.ㅜ
논리적으로는 북측의 주장대로 MDL이 그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이제와서 남측이 수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북한은 NLL과 MDL이 겹치는 지역에 대한 남한의 통제력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북한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MDL 에 속하는 지역의 섬들을 북한 영역에 있는 부속 도서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2010년 교전이 발생했던 근본 원인이다.
만약 이 겹치는 지역을 비무장 지대로 설정해서 이동 통로와 고기잡이 지역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공동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 심각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현저히 줄일 수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The West Sea Special Zone for Peace and Cooperation)"이다. 이것은 2007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통해서 함의했었던 해상의 비무장지대 설정이었다. 하지만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이 합의를 폐기해 버렸고, 2010년 11월 이후에는 오히려 이 지역의 군사력을 현저하게 증가시키고 있다.
이명박의 대북한 정책은 보수 정권이 취해왔던 "북방정책(nordpolitik)"을 잇고 있다. 전통적인 북한의 우방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서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을 고립시켜서 북한을 개방시킨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선거 때마다 북풍으로 잘 이용해 먹기도 좋고, 미제 무기도 많이 팔아주면서 미국의 귀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대 정권에게는 일거양득이다. 하지만, 이명박의 요즘 행보를 보면, 이에 더해서 다른 우방들과 힘을 합쳐 북한을 고립시킨 후, 북한이 혼란에 빠지면 북한을 흡수 통일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연평도 사건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갑작스러운 도발로 발생한 남한과 북한 사이 최초의 무장충돌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은 보이는게 전부 다가 아니다. "남한의 연합뉴스는 정부에 의해서 통제되는 신문으로 친정부적이기 때문에, 연평도 포격사건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보도가 매우 기만적이었다. 당시 북한은 46명의 해군이 사망한 천안함 침몰 사건의 주범으로 부당하게 비난받았고, 남한 정부는 이 사건의 증거를 조작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은 이명박의 정치 선전에 이용된 사건에 불과했고, 연합뉴스는 이를 발표하고, 퍼뜨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라고 Jim Beal은 단정하고 있다.
연평도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가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남한의 보도는 적어도 두가지의 매우 중요한 잘못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의도적인 거짓말이고, 다른 하나는 왜곡이다.
첫번째, 거짓말. 남한은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에 "깜짝" 포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와 같은 진보 신문 조차도 종종 이런 주장을 무조건 따라했다. 그러더니 2011년에는 북한의 "깜짝" 포격 공격이후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를 대비해 군사력을 증강시켜야 한다는 논조의 기사들이 올라온다. 북한이 11월 23일 포격을 가했을 때, 남한의 군인들이 평상시와 같이 일상적인 활동을 조용히 하고 있다가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연평도 해역에서 이루어졌던 남한 해군의 '실질적인 포격' 훈련에 대응한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군사훈련이 있기 전 수 없이 경고했었고, 11월 23일에는 아침에 전화도 했었다고 한다. 우리는 북한이 얼마나 실체적이고 명시적으로 경고를 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연평도에서의 이 군사훈련은 남한의 공식적인 '호국' 훈련의 일환이 아니었다.(The exercise at Yeonpyeong happened at the same time as, but was not officially part of, a massive South Korean military exercise called Hoguk(defending the country)
북한을 특히 자극한 것은 미국의 31해병원정대(the 31st Marine Expeditionary Unit : MEU)였다. 이 부대는 북한을 침입했을 경우, 핵무기 시설을 장악하는 것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호국 훈련이 북한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려 한 것이었다는 추측도 있지만, 적어도 이 호국훈련이 먼저 긴장을 고조시킨 것은 확실하다. 북한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의 '실질 사격'은 위에서 언급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남한 측이 어느 방향으로 사격을 하던지간에 북한이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북한 해역 안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포격은 이러한 '실질적인 사격'에 대한 대응이었고, 자신들의 주권 침입에 대한 반격이었던 것이다.
"적의 공격이 노리는 주요 목표는 만약 남한측의 포격에 대한 실질적인 반격이 없다면, 연평도 해역을 자신들의 영토에 있는 해역이라는 것을 북한이 인정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 적의 도발에 내제한 교묘하고도 악질적인 본질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의 비판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은 자신들의 경고가 말 뿐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포격이 시작된 그 위치에 진두해 있는 포병대에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공격을 하는 자기 방어의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남한이 이 지역에서 '실질적인' 포격 훈련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반응이 어떨지 시험삼아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지른 것 같다. 남한이 이런 도발 행위를 했을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 상황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했는지는 모르겠다. 남한과 북한이 전투를 시작한다면 그것은 미국의 허락이 있었다는 의미이고, 그러면 중국이 개입할 것이고, 곧이어 역사상 두번째로 중국과 미국이 맞붙는 세계 대전으로 확대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큰 소리만 쳤지 반격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자신들의 북방한계선 주장에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북한의 경고를 무시하고, 군명령체계에 따라 북한의 경고를 윗선에는 알리지 않은 채 그냥 한번 일을 저질러본 것일까? 아니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위기를 심화시키기 위해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까지 감수했던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남한의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연평도 사건이 북한의 "깜짝 공격"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학자의 주장이 맞다면, 이명박은 연평도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않고, 총알 받이로 그곳에 그냥 내버려둔 것이었단 말인가? 아침에 전화까지 했다잖아. 그래서 기사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이제서야 눈에 확 들어오는 말이 있었다.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경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 그랬다. 북한은 연평도 사건 때 전화까지 직접 걸면서 도발행위(실질 사격)을 하면 반격하겠다고 수차례 경고했지만 남측은 이를 무시하고 '실질 사격'을 한 것이다. 나는 몰랐다. 군사훈련할 때는 '실질 사격(real fire)'는 안한다는 것을.
그런데 이들은 주민들을 그냥 내버려두었고, 북한은 경고한 대로 반격을 했고, 정부는 북한이 "깜짝" 공격으로 도발을 했다고 시끄럽게 분위기만 띄우다가 슬그머니 덮어 버렸다. 진정으로 북한의 깜짝 도발을 염려했다면, 대피소도 아직 제대로 마련해주지 않았는데 또 다시 그 지역에서 군사훈련을 할 수 있는거냐?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 사건이 터진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변변한 대피소도 마련해 주지 않았다니. 국민들을 총알받이로 쓰는 이 악덕 패당 역적들 때문에 또 개죽음을 당하는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또 그 범죄를 혼자서 다 뒤집어 쓰고 손가락질 받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북한이 이번에 그렇게 열심히 주민들 대피하라고 '직접' '경고'한 것이었다. 아, 슬프다.
연평도 사건은 북한이 과잉대응했다거나 혹은 남한이 쳐놓은 덫에 자기 발로 걸어들어갔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한 정부나 언론은 이 사건에 대해서 떳떳하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몇 년동안 이 문제가 된 해역에서 사격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이 남측 보다 북측이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두번째는 '민간인' 사상자라는 왜곡이다. 이명박은 대국민 연설에서 북한의 포격을 "비인간적인 범죄"라고 부르면서, 민간인에 대한 북한의 무자비한 공격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1950-53년 한국전쟁 이후, 남한 영역에서 이루어졌던 최초의 북한 공격이며, 이로 인해 두 명의 젊은 해병과 두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 두 명의 운 없는 민간인들은 군사기지에서 일하는 인부들이었고, 사건이 발생한 날 섬에서 부상당한 18명 중에서 민간인은 단 3명이었다. 실지로 정부는 이 사망한 두명의 인부들의 가족들이 요청한 '국가유공자' 자격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지금은 인정이 됐나? 모르겠다. 아마 언론에서 떠들어대면 몰라도 조용히 있는데 뭐하러 수고를 하겠는가) 사망한 '민간인'들이 이 사건의 진실을 더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이 남한 정부, 연합뉴스가 주장하는 것을 대부분의 세계 언론도 받아들여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위키피디아에는 남한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인 세계 각국들의 명단이 나와있다.
정부의 천암함 사건 증거 조작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정부의 주장에 비판적이었고, 2010년 6월 선거에서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사건을 북한의 "갑작스로운" 공격으로 알고 있는 대중의 분노 때문에 정부의 입지를 다시 확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사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천암함에 대한 자신들의 마음을 바꾼 사람도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리고 이후 남한은 무기를 엄청나게 구입하고 이 지역에 군사력을 강화시킴으로서 한반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2월 20일 소동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북미 고위급 회담이 2월 23일자로 예정되어 있는데, 2월 27일에 팀스피리트 훈련을 시작한 이래 23년만의 최대 규모로 하는 한미합동 해병대 상륙훈련에, 쌍룡훈련까지 하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고위급 회담은 2011년 7월과 10월에 개최되었던 1차, 2차 고위급 회담에 이은 것인데, 본래는 12월에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북한의 상황을 지켜보려던 미국이 '식량지원'을 핑계로 회담을 연기했다가 , 북한의 빠른 안정세를 보고 이번에 회담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13일(현지시각) 미 국무부 대변인이 23일 열릴 것이라고 발표한 북미 고위급 회담의 양상은 이전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즉, 미국은 여태까지 북미 회담 전에 반드시 남북 회담을 먼저 하도록 고집해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2011년 12월 30일 이명박과는 절대로 상종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고, 2월 2일에는 북한 국방위원회 명의로 9개항의 공개질문을 발표했다. 그 후 남한은 열심히 북한에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2월 7일에는 산림청장 이름으로 고구려 고분군 병충제 방제협의를 하자고 하고, 2월 14일에는 대한적십자사 총재 이름으로 개성이나 문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하며 계속 집적대고 있지만, 전부 거부하면서 우선 자신들이 발표한 9개항의 질문에 대한 답변부터 하라고 일축하고 있다. 남한은 그동안 형식적으로나마 이름표를 올리던 회담에 이젠 얼굴도 못 내밀게 된 것이다. 남한의 자진 셀프 왕따 프로젝트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번 2월 20일 군사훈련 소동 전에 2월 9일자로 동아일보에 재미있는 기사가 나왔다. 제목은 "키리졸브-독수리 연습 때 미 항공모함 안 온다" 이 기사는 "한국 국방부가 함모의 훈련 참가를 미 국방부에 요청했지만, 유력한 후보인 미 7함대 소속 항모 조지워싱턴이 현재 수리 중이어서 파견하기 힘들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미 항모가 훈련에 불참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이다. 2008년에는 미 7함대 소속 칼빈슨호, 2009년에는 존스테니스호가 참가했었다. 그리고 23일로 예정된 남북 대화 없는 북미 고위급 회담.
그래서 20일 시행된 군사훈련은 나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해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한테 배신(?) 당한 이명박과 여당이 한방 크게 터뜨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던 것이다. 사실 오바마는 이미 신년 의회 연설에서도 북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표명한 바 있다. 북한과 미국이 잘만 한다면 한반도에 봄바람이 불 것이다.
그러니 총선 전에는 어떻게든 국내 정세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큰거를 한방 터뜨려야 한다. 틈만 보이면 마지막 발악을 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북풍 밖에 또 뭐가 남았는지 내 머리로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입을 꽉 다물고 있던 진보 언론에서도 이제 하나씩 나꼼수가 지적했던 의혹들에 대한 후속기사가 올라 오고 있다. 한국 역사상 최초로 MBC, KBS 동시 파업에, '선관위 디도스' 사건이라고 꼭 막고 있었던 것도 이제 슬슬 '10.26부정선거' 사건으로 제 자리를 잡아갈 태세다. 북풍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까. 그런데 미국한테 토사구팽 당하게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 선거철로 몰아 둔 한미군사훈련을 핑계로 긴장을 고조시켜서 국내 정세를 뒤집을 수 있는 한방을 노리고 있다면...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 중국. 중국한테 기대는 것이다.
그래서 2월 20일자로 올라온 조선일보 기사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정부, 中에 "북 도발시 강력응징" 의사 전달> 하하하. 북 도발시 강력응징 의사전달이 아니라, "행님, 나 이번에 또 한건 해도 돼? 허락해줘, 허락해줘~~"였겠지. 조선일보는 문화일보의 기사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 20일 서북5도에서 실시된 해상 사격훈련과 이날 시작된 한미합동 잠수함 훈련을 앞두고, 우리 정부가 중국 고위층에 ‘북한이 도발할 경우 강력 응징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고, “중국은 이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한 관심사라는 원론적인 답변이 있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이제 나는 이 사기집단이 또 북한을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어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온갖 추태로 세계적인 비웃음을 당하고, 곧 쫒겨나가게 생긴 정부편을 들면서까지 미국이 무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는 뇌를 가지고 있는 닭대가리라면 이제 어느 줄 뒤에 서야 하는지 감을 잡았을 것이다. 이 글을 마치면서 이르게 된 내 결론은, "한미군사훈련 소동? 새가 되어버린 너!" 이다. 잘가라.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자료를 찾던 중 소위 '진보' 언론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한심한 기사를 올리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북한 관련 기사는 전부 조중동을 그대로 베끼고 있었고, 좀 더 디테일한 정보는 전부 조중동 보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조중동의 논조에 말려서 남한의 군사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거나, "정파 싸움 때문에 군개혁 입법안이 표류 중"라는 한심한 기사만 열심히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정말 시간이 갈수록,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화가 난다. 이들 소위 '진보' 언론이 너무 한심해서. 정말 화가 난다.
돌겠다. 온 종일 머리에 뭐가 막 돌아다녀서 아주 죽겠다. 생활이 엉망이 됐다. 완전 미친 사람같다. 할 수 없이 생각의 파편들을 메모지에 적어 내 방에 덕지덕지 붙이기 시작했다. 일기도 안 쓰는 나는 평생 살면서 이런 짓을 해본 적이 없다. 쓰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청소를 잘 안해서 더러운 방이 아주 꼴이 말이 아니다. 도대체 왜 이러냐?
다 너 때문이다. 나꼼수!
처음 방송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날카로운 비평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논리전개와 증거.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욕설과 정 전 의원의 깔대기가 섞여 있었다. 속 시원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치 관련 방송에 저런 사람이 있으면 괜히 트집잡힐텐데, 왜 같이 하지,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은 '김어준의 뉴욕타임스'를 처음부터 뒤져보면서 명쾌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느꼈다. 우리도 이제 뭘 할 수 있겠구나. 생활의 청량제이자 가이드가 되었다. 그러다 최근에 깨달았다. 나꼼수 덕분에 우리는 지금 그 옛날 프랑스 혁명과 같은 역사적 사건의 주연이 되었다는 것을. 거대한 천지의 기운이 우리에게 모아져서, 이렇게 작고도 작은 나 같은 개인의 손 끝에, 의지에 반응을 하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꼈다. 나꼼수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는 '대중'의 일원으로서 함께 할 수 있어서 느낄 수 있는 특권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렇게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그런데 나꼼수에 대한 소위 '진보' 언론, 지식인들의 반응은 가히 엽기적이다. 처음엔 그냥 의아했다. 혼란스러웠다. 나중엔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다들 제정신이야? 상아탑에 갇힌 철밥통 교수들은 그렇다치고, 한겨레고, 경향이고, 프레시안이고, 심지어 오마이뉴스까지, 소위 '진보' 언론이라는 간판을 단 것들이 나꼼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더니, 비키니 사건 터지니까 막 달려들어 물어 뜯는다. 그러고 나꼼수 봉주5회 방송 한번으로 김이 홀라당 빠져버렸고, 좀 민망하게 끝나버렸다. 아니 민망해서라도 그 다음부터는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 슬금슬금 말도 안되는 횡설수설 글들은 계속 올리면서 나꼼수가 제기했던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뭐냐? 으스스한 무서움 마저 느꼈다. 그래서 글을 써서 올렸다. "나라 말아 먹을 진보, 나꼼수가 잘 나서 싫은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겨레를 비롯해서 경향 등 소위 진보 언론이 참여연대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 얻어낸 문서를 근거로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 아닐지 모른다는 소리를 해댄다. 이제서야? 아, 한심해. 그럼 여태 나꼼수가 제기한 의혹들을 안 믿고 있었다는 말이냐? 적어도 찾아가서 확인이라도 해봤어야지!
그리고 진중권 이야기도 나왔다. 대중을 계도하기 위해서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전사,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란다. 이런 어이없는. 이 글을 올린 언론은 한겨레였다. 그것도 한겨레 21의 커버 스토리로. 잡지 표지의 주인공이 진중권이다. 웃겼다. 마치 부랴부랴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려는 아이 같았다. "陳의 전쟁 : '입 진보'냐 '전사'냐 ... 이 시대의 문제적 인간 진중권"! 이 글은 조선일보에나 나오면 딱 어울리는 글이다. 나꼼수를 무시하고 욕하는 것에 대한 이론적인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겨레다. 한겨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 방송을 시작해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김어준의 뉴욕타임스'를 내보내고 있는 대표적인 진보 언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들도 지금 다들 혼란스럽구나. 하지만 진작에 나꼼수의 진가를 알아보고 서로 힘을 주고 받으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대중'은 안보이냐? 너희들이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건지 알고 있는거냐? 닭대가리 먹물들!
'이론'이 무섭구나, 새삼 느꼈다. 이데올로기는 특정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발생하지만, 현실과 유리되어 사회경제적 현실을 왜곡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남한의 소위 지식인들이라면 이 정도는 다들 상식으로 알고 있을텐데 말이다. 이들의 행태는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에 갇혀서 꼼짝 못하고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한겨레의 이런 행태를 보면, 나름 고민하면서 나오려고는 하는데, 못해서 스스로도 괴로와하는 모습이다. 먹물의 비애!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급한 것은 '이론'이다, 확신하게 되었다. 나꼼수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대부분 왜 진중권이 나꼼수에 대고 해대는 독설 - "욕설"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이 인간은 심한 '열등감'에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환자다. 그냥 막 떠들어대고 있을 뿐.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을 똑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 에 대해서 분노하는지 그냥 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혹은 진중권이 하는 소리가 맞나? 아닌가? 오락가락하면서 나꼼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학의 통찰!
나꼼수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은 이전부터 했다. 하지만 그 작업이 현재 우리 사회에 몹시도 시급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나꼼수를 지원하는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논리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우려고 하는 소리지만, 오히려 논쟁의 전선을 흐려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동력을 빼앗아 가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많다.
KBS도 파업을 시작함으로써,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MBC와 KBS가 동반 파업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우리가 선거에서 승리할 것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기존 이론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새로운 이론의 정립이다. 이 헝클어진 실타래를 제대로 풀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더 큰 반동의 에너지와 훨씬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나꼼수 덕분에 시작한 이 싸움은 단순한 선거 승리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철저한 승리여야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소위 "지식인"이라고 설레발 치고 다니는 닭대가리들 때문에 더 심한 혼란의 시대를 겪게 될 것이다.
블루오션이다. 어디선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니 벌써 작업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완전히 파묻혀서, 아직은 별 거지 발싸게 같은 것들의 횡설수설이 담론을 장악하고 있다. 언론을 그들이 완전히 장악해서 말아 먹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정말 무섭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 때문에 시작한 블로그지만, 나꼼수를 위한 이론을 나 혼자서라도 정리해 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 나온 "Satire in South Korea " 기사 덕분에 나꼼수에 대한 진가를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하지만. ㅋㅋ 상관없다. 조만간 나꼼수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꼼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닭대가리 먹물들과 아직도 너무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소위 '진보' 먹물들이, 이들의 간사한 혹은 어슬픈 혀로 나꼼수에 똥칠 하는 것을 보게 될 가능성이 많다. 차라리 내가 하고 말자. 우리가 해야 한다.
어차피 나도 나꼼수 때문에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해야 한다. 이렇게 머리 속에 뭐가 막 돌아다니는 상태로는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하니까. 더하기, 곱하기도 못하는데, 미적분을 풀 수는 없는 일. 성질 내지 말고 하나씩, 생각을 정리해 보자.
"김어준, 너는 누구냐?" "나꼼수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과 같이 역사에 길이 남는 보물이 될 것임을 나는 지금 확신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쓰는 이론에 관련된 작업은 100% 나꼼수와 김어준이라는 사람 때문에 가능한 것이므로, 제목을 <나꼼수> 시리즈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나도 나꼼수의 진가를 알아본 지혜로운(? ^^) 사람들 중 한 명이므로 나에게도 선물을 주기로 했다. <이론의 맛> 이렇게 시리즈는 시작된다. 김어준과 나꼼수, 도올 김용옥 선생 그리고 감히 이론적으로 정리해 보겠다고 도전해 볼 기초를 마련해 주신 나의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번 나꼼수에 나와서 말씀을 해주실 기회가 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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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은 순전히 개인의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이론을 정리해보자고 한 용감무쌍한 필자의 호연지기는 순전히 개인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개인의 수필 혹은 소설 정도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여나 틀린 사실을 쓰면 지적 좀 해주시죠. 이왕이면.
<2012년 2월 22일>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오바했다는 것을. <나꼼수>는 내가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간판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도 올라오고 있지 않은 나꼼수를 나처럼 모두 다 학수고대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방송이 올라오는 즉시 다들 열심히 감상문을 쓸 것이고, 또 힘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시리즈는 그냥 <이론의 맛>으로 가기로 했다. 혹여 이 글을 읽고 살짝 불쾌했던 분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분들이 있었다면, 죄송합니다.
그동안 진중권과 대중의 설전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요즘 <나꼼수>에 대한 소위 진보 언론, 지식인들의 태도가 너무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워 고민하던 중 <陳의 전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陳의 전쟁>을 읽고, 우리나라에 이렇게 천박한 이명박 파쇼 정권이 들어서는데, 이런 유의 인간들이 소위 "지식인" 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토양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중권은 "정신분열증" 증상에, 자신을 야만적인 "대중"으로부터 분리된 "초월적인 존재"로 보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판타스틱 에고이스트 감성에, 게다가 심각한 "열등감"을 가진 한마디로 '히틀러'와 같은 인간 유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도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앞세워서 이라크 전쟁 등을 부추기고 금융자본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서구 사회의 극우파 보수 세력의 사고구조와 똑같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히틀러의 독일로 전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진 보수 지식인들이었고,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진중권에 대한 자료를 좀 더 찾아 보다가 이미 이런 문제를 지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 내가 이글의 제목으로 사용한 "드디어"란 말은 잘못 사용한 것이다. 뒤늦게 이 문제를 깨달은 나에게 그리고 이런 유의 인간들이 우리사회에서 스타 지식인으로 활보하게 만든 그 무엇의 가면이 "드디어" 찟겨 까발려질 때가 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1. '자유민주주의' 탄생의 사회경제적 배경 2. 국가와 사회가 단절된 자유민주주의 국가관 3. 마르크스주의와 파시즘 4. 결론 5. 맺으며
아, 그랬구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어제 한겨레 21의 <陳 의 전쟁 : '입 진보'냐 '전사'냐 ...문제적 인간 진중권>(이하 '陳의 전쟁'으로 표기) 라는 글을 발견했다. 요즘 계속 머릿 속을 돌아다니며 나를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했던 의문점, 바로 그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 주는 속 시원한 글이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구나 싶은 마음도 들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한겨레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이 글은 요즘 나꼼수 같은 것들하고는 절대로 상종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소위 '진보' 언론과 소위 '진보' 지식인들의 행태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설명해주는 멋진 글이다. 다만, 얼마전 나꼼수의 전봉주 전 의원 투옥과 관련해서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실렸던 두 개의 기사와 논리구조가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 가사들을 읽으면서 혹시 진중권의 나꼼수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옛날 황빠, 심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대중들과의 논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자료 찾기가 무서워 손을 놓고 있었는데, 정말 고마운 글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그렇다면, 이 글은 한마디로 요즘 나꼼수 열풍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소위 '진보' 진영 지식인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촛불에서 보여주었던 대중의 "긍정적 계기"가 왜 또 나꼼수 "광풍"이라는 "어둠의 힘"을 가진 "폭민"으로 변해서 설쳐대고 있는지 의아해하고,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소위 '진보' 지식인들의 자화상이다. 그동안 나꼼수가 제기한 수 많은 의혹들, 그리고 최근에는 "선관위 시스템 개비 시도 의혹"과 같은 중차대한 일에 대해서 조차도 철저하게 무르쇠로 일관했던 그들의 엽기적 행태의 처음과 끝을 음미해 보자.
얼마 전에 이코노미스트라는 영국 잡지에 정봉주 전 의원 징역형 선고와 관련해서 "Satire in South Korea" 라는 주제로 기사가 두 개 올라온 적이 있다. 첫번째 기사는 2012년 1월 16일자로 올라 온 "Sneaky tricksters... unite!" 였고, 두번째 기사는 1월 21일자로 올라온 "Lampooning the pols"이다. 첫번째 기사는 이코노미스트 홈페이지 아시아편 안에서도 독립적인 카테고리인 "Banyan" 의 주제 기사로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프린트 판이 올라올 때 "Lampooning the pols"라는 기사로 갑자기 대체되었다.
바쁘신 분들은 그냥 이 두개의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읽고, '陳의 전쟁'을 읽으면 된다. 이 글을 읽은 내 소감은 한마디로 웃기다이다. 웃겨 죽는 줄 알았다. 근엄한 척 하더니 겨우 이거였어? 근데 왜 남의 걸 베끼고 그래. 그리고 발견한 특종감. 진중권은 이명박의 절친이었다!
앞으로 진중권이 뭐라 한다고 괜히 몰려가서 항의 하지 말고 그냥 냅두는게 약이다. 이런 사람은 그 유명한 "자유주의자의 정신분열증"에다가, "열등감"에 사로잡힌채 혼자서 전지적 작가 시점 놀이를 즐기는 불쌍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뭐, 좀 더 훅까놓고 얘기하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닭대가리"로 보시면 되겠다. 왜냐?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陳의 전쟁'이 제시하고 있는 논리구조는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나꼼수를 평가하면서 내놓은 기시 두개의 그것과 똑같다. 이 두 기사는 논조가 극단적으로 다른 것이었는데, 이코노미스트가 마지막 프린트 판에 올린 것은 '陳의 전쟁'과 정반대의 논조를 가진 것이다. 그러니 이코노미스트가 기초로 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탄생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을 먼저 살펴보겠다.
1. '자유민주주의' 탄생의 사회경제적 배경
이코노미스트가 국가와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틀은 '자유민주주의'이다. 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특정한 사회경제적 구조에 기초해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특정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이론이라 하겠다.
로크, 몽테스키유, 밀과 같은 고전 사상가들의 자유주의 국가 이론의 핵심은 '국가권력의 억제'에 있다. 즉, '국가권위의 정당성'은 시민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것으로부터 연유하며, 이를 위해서 국가권력이 '법치주의'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기본틀이다. 이런 자유주의 국가관에 더해서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정치적 에너지를 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즉,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잉태한 사회.경제적 배경은 근대 자본주의 국가의 탄생과 그 진행 과정에서 일어났던 사회 세력들간의 투쟁이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1689)은 근대 자본주의 국가 이데올로기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명예혁명에서 최초로 국가가 시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의 정당성을 '시민의 동의'에 있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국가가 보호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시민의 권리가 바로 '소유권'이다.
자유주의는 처음부터 민주주의를 함의한 개념이 아니었다. 1689년 명예혁명 당시 입헌군주제를 지지했던 휘그당은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재산 소유자들이었다. 그리고 밀을 포함해서 많은 고전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었다. 책임있는 정치 참여는 '교육' 과 '재산'이라는 자격이 요구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과 '재산'이라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정치 영역에서 배제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게다가 이들이 의회에 진입하려는, 즉 정치 영역에 진입하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불량스러운 것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영국은 1800년대에 들어서면서 또 다시 커다란 사회경제적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영국은 명예혁명 이후에도 오랫동안 국가가 경제를 주도하는 '중상주의' 정책을 펴고 있었다. 그런데 2차 산업혁명을 통해서 성장한 산업자본가들이 의회에 진출하기 위해서 정치적 운동을 전개했는데, 그것이 바로 1819년에 벌어졌던 '곡물법 폐지'와 '선거법 개정' 운동이었다. 한편에서는 산업혁명을 거치는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한 공장 노동자들이 1811년 기계파괴 운동을 시작으로 힘을 모으고, 정치적 각성을 하면서 산업노동자 계급으로 성장해 갔다. 이들은 자신들의 대표도 의회에 진출시키면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선거법 운동'과 '곡물법 폐지'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결국 1832년 선거법이 개정되었는데, 이것이 영국에서의 1차 선거법 개정이다.
하지만 이 두 세력에게 돌아온 결과는 달랐다. 1832년 선거법 개정은 여전히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선거권을 인정하는 매우 한정적인 것이었고, 그 범위가 조금 더 확대된 것에 불과했다. 산업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선거법 개정을 중심으로 정치적 투쟁을 계속해 갔고, 이후 선거권은 오랫동안 조금씩 확대되어 갔다.
이렇게 일찍이 산업혁명을 끝내고 입헌주의에 기초한 근대 자본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후, 안정적인 자본주의 경제를 바탕으로 부를 축적해가던 영국, 그리고 왕을 처형하는 혁명을 통해서 근대 자본주의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프랑스를 일컬어 선진자본주의 국가라 부른다.
하지만 이들 선진자본주의 국가를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들은 봉건제의 사회문화적 뿌리가 깊게 남아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자본주의 발전이 많이 뒤쳐져 있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왕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이 쌓인 상업 혹은 산업자본가가 성장하지 못했다. 그래서 뒤쳐진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선진자본주의 국가를 따라 잡기 위해서, 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근대 자본주의 국가로 전환하기 위한 개혁정책을 실시한다. 그래서 구체제의 봉건 귀족들이 그대로 근대 자본주의 국가로의 개혁을 주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즈음에는, 이미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었다. 정치 영역에서는 배제되어서 자신들의 요구를 정치에 반영할 수 없었던 공장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불만이 쌓이면서 긴장감이 커져갔다. 그리고 이런 사회.경제적 상황은 복합적으로 마르크스주의가 등장하는 토양을 제공했다. 마침내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고, 그 해 영국을 제외한 유럽 전역에 혁명이 휩쓸고 지나갔다.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당시 이러한 유럽의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탄생했다. 즉,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봉건제를 대체하면서 성장한 새로운 상업, 산업 자본가들이 한편으로는 왕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요구를 억압하기 위한 무기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2. 국가와 사회가 단절된 자유민주주의 국가관
구체제가 붕괴되고 근대 자본주의 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은 근대 '헌법'의 탄생 과정이기도 하다.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권리 - 특히, 소유권 - 를 보호하고,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때에는 - 세금 부과나 인신구속과 같은 - , 반드시 법에 정한 바에 따라야 한다는 법치주의를 '헌법'이라는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헌법'은 근대국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당시의 사회경제적 상황, 즉 자본주의가 탄생하고 발전하면서 강력해진 경제적 힘을 이용해서 왕(국가권력) 에 대항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요구를 억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이다.
가장 중요한 특징이 '사적인 영역(사회)'과 '정치적 영역(국가)'의 분리이다.
사적인 영역에서 '인간(인간의 개념에도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지면 관계로 그냥 '인간'이라고 하자) '은 누구라도 국가권력의 간섭을 받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누린다. 이것이 바로 사적인 영역에 있는 개인이 누리는 '천부적인 인권'이다. 그래서 '사적인 영역'에서는 사람들간에 구별이 없다. '인간'이기만 하면 된다. 국가는 함부로 이 사적인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 침범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시민의 대표가 만든 '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언론의 자유'와 같은 사적인 영역에 있는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침해하는 것, 심지어 국가가 인신을 구속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정봉주 구속에 대해서 경기를 일으킨 이유이다.
하지만 '정치적 영역(국가)'은 이런 '사적인 영역'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이 영역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정치적 영역에는 책임있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시민'만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도 못 받고, '재산'도 없는 것들이 정치영역으로 들어와서 큰 소리 치는 것은, 주제도 모르고 설처대는 위험한 "닭대가리들의 운동회"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어둠의 힘'이 오바를 하면 확실히 밟아줘야지 아니면, 천성이 본래 비이성적이라 자꾸 기어올라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이 닭대가리들은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는 한에서만 귀여워해줄 수 있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처럼 그렇게 자기들끼리 그냥 놀다 가면 얼마나 좋아. 밤새고 노래를 부르던, 춤을 추던, 생쑈를 하던 무슨 상관이야. 내가 돌아 다니면서 아프리카 TV로 중계 방송 하면서 같이 놀아 줄 수도 있다고.
그래서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닭대가리들이 정치영역에 와서 물 흐리지 못하도록, 닭대가리들의 운동회는 '놀이' 또는 '오락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계속 일깨워줘서 "제 몫"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에 불탈 수 밖에 없다.
3. 마르크스주의와 파시즘
그런데 이런 '국가와 사회의 엄격한 분리'라는 구조 자체가 없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이론과 히틀러 독일의 파시즘이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자들은 이 둘을 쉽게 하나로 묶어 버릴 수 있었다. 자신들은 세계의 평화, 인권, 자유, 민주주의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자만심에 이런 형태의 국가관이 왜 발생했는지 조차 생각해볼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냥 둘 다 비이성적인 대중의 야만적인 폭력만이 난무하는 역겨우면서도 두려운 그리고 숨기고 싶은 불구인 사생아였다.
거기다 2차 대전후 이어진 냉전으로 인해서 이 둘의 차이점을 숙고해 보려는 학문적 시도조차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배척되었다. 어차피 자유민주주의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흡수하는 측면에서의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고, 냉전으로 인해서 사회주의 국가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사람들이 "공산주의 = 파시즘" 이런 식의 등식을 계속 종교처럼 받들도록 조장함으로써 정치적 이익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이론의 근본 사상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부정하고 경제 민주주의를 달성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의 정치적 에너지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이 이론이 생성된 토양이 산업사회였기 때문에, 여전히 마르크스를 부르짖는 것도 어색하게 되었다. 인터넷이 기본 생활 수단이고, 교수며,의사며, 판사며 죄다 시한부 노동자로 전락하는 요즘같은 세상에 폭력을 통한 정치권력 쟁취가 그 목적이니, 이 이론의 가치가 그동안 평가절하되었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매력을 잃어버렸다. 적어도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다.
반면에, 독일 파시즘은 자유민주주의와 같이 '자본주의'를 그 경제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파시즘은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에너지를 아예 말살시켜 버려서 국가가 위에서 아래로 사회를 완전히 장악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민주주의'가 실은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요구를 억압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였다는 점에서 괘를 같이 한다. 그래서 파시즘의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경제 민주주의'와 완전히 대립한다. 특정 소수가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국가권력을 이용해서 경제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다수의 대중들은 빈곤층으로 몰락해도 민주주의이다. 소수의 기득권자들이 학생들까지 볼모로 붙잡고, 자기 식구들끼리 자리를 다 차지하고 앉아 학교를 이용해서 부를 축적하고 세금 한푼 안내도 민주주의이다. 몇 백억 대 부자가 자기 자식을 자신 소유의 빌딩에 입주한 중소기업에 위장취업시켜서 집 한칸 없는 서민들보다 더 적은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내면서 호화생활을 즐겨도 민주주의이다.
그리고 자꾸만 확대되어 가는 선거권과 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억압하기 위해서 오로지 '선거'만 하면 민주주의는 다 완성된 것이라는 환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언론의 자유 같은 건 국가가 좀 밟아도 된다. 언론의 왜곡, 거짓말, 선동이 중요하다. 이런 일을 잘하는 언론사의 능력있는 기자들이 대표적인 부정부패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가 보기에는 우리 남한의 민주주의 지수는 2010년과 2011년 껑충 뛰어 올랐다.
파시즘의 특징은 정치 에너지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완전히 장악한다는데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정권을 잡을 때, 거짓말로 대중을 선동해서 표를 얻는 것이다. 표만 얻으면 그걸로 끝이다. 이제 짓밟히는 일만 남았다. 자유민주주의와의 차이점은 자유민주주의는 그래도 국가권력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사적인 영역'이 설정되어 있고, 개인의 권리가 '법'에 의해서 보장된다는 것이다. 히틀러 독일의 파시즘의 특징은 그 선동의 주제가 '인종'이었다는 것.
아무튼, 이 둘이 묶여지는 데에는 제2차 대전 후 히틀러를 피해서 특히 미국으로 도망왔던 유대계 학자들의 이론작업과 냉전이 큰 역할을 했다.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서로 자신이 더 좋은 체제라고 경쟁을 하던 냉전시대에는 오히려 특히 선진국을 중심으로 복지국가가 당연시 되었던 사실을 기억하시라. 당시에는 개인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소비에트가 붕괴하고 난 후 자유민주주의가 독점적으로 주도하게 되자, 세계는 더욱 더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분열과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왔고, 이제 그 파국을 기다리고 있다.
4. 결론
여차 사정이 이러했으니, 더러운 권력의 꼼수에 똥침을 날리고 맨 몸 하나로 피 튀기는 링위에 올라선 <나꼼수>에 열렬한 호응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남한 대중들에게 <나꼼수>의 "정치적 욕망"에 파쇼적, 나치즘적 광신을 보이는 닭대가리들의 부흥회 같이 보인다고 한 진중권의 표현은 가히 엽기적이다. 엽기적인 이유는 이 사람이 서 있어야 하는 진영이 이 진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고 방식의 틀 자체도 그렇고, 현실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에서도 그렇고. 차라리 반대 진영으로 폴짝 넘어가면 그림이 어울린다. 딱이다.
한국의 대중들은 어떤 때는 촛불을 들고 놀면서 예쁜 짓을 하다가, 어떤 때는 집단 광기를 보이는 "어둠의 힘"을 가진,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 없게 조변석개하고 조삼모사한다고 투덜댈 것 없다. 이런 문제가 생긴 이유는 증신분열증으로 인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 지를 착각하면서 살아왔다는 데있다. 근데 너무 열심히 살아서, 오히려 우리 사회에 해가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제 '陳의 전쟁'을 통해서 그의 모습을 홀라당 다 보았다는데 의미를 두자. 그러니 앞으로 이 사람이 뭐라고 떠들어대든 괜히 몰려가서 항의할 것 없다. 그냥 혼자 떠들게 내버려 두면 된다. 이런 증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닭대가리는 상대하면 신나서 더 떠들어 대기 때문이다.
한가지 희망사항이 있다면, 요즘같은 디지털 시대에 산업사회의 틀에서 못 벗어나고 헛발질하고 있다고 이명박 욕하지 말고, 둘이 같이 오붓한 시간 보내시라. 천생연분이다.
참, 그리고 산업사회의 틀을 못 벗어난 당신의 닭대가리로 놓치고 있는 것 하나를 더 지적하자면, 그래도 이코노미스트는 마지막 논조를 결정할 때, 처음에 계속 올려져 있던 기사 "Sneaky tricksters... unite!" 라는 기사를 후다닥 내리고, "Lampooning the pols" 라는 기사를 프린트판에 올렸다. 당신과 똑같은 논리구조로 남한의 나꼼수 열풍을 조롱하다가, 결국에는 나꼼수가 오로지 사적인 영역에서 '풍자 놀이'를 즐기고 있다고 했다. 물론 사실이 아니지만, 나꼼수를 정상적인 '시민'으로 끌어 안고 싶다는 의사표시이다. 이론 구조가 너무 낡아서 어느 쪽으로 집어 넣든지 간에 나꼼수에게는 맞지 않는다. 새로운 이론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북한한테 만날 개똥폼이나 잡다가, 나랑 사람들 앞에서 사진 한번만 찍어달라고 돈봉투 날리지를 않나. 요즘은 놀아 달라고 계속 찔러대지를 않나. 웃기고 자빠지신 각하와 그 일당과 그리고 소위 '진보' 닭대가리들이 생각이 난다. 당신들이 그렇게 신주단지 모시듯 그리고 자랑스럽게 품고 있었던 자유민주주의는 구식된지 오래 됐다. 너무 낡아서 이제 아무도 거들떠도 안봐. 요즘 서구 사회에서 난리가 난 '자본주의 논쟁'이 바로 이거야. '자유민주주의'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럼 대안이 없나? 그런데 아직 못 찾았어. 그래서 다들 찾느라고 난리가 난거야. 그런데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짓거리를 보라고. 아, 내가 민망하다.
무식하면 입 닥치고 조용히 자빠져 있어. 나는 닭대가리다 광고하고 다니지 말고.
그런데 더 불쌍한 건, 눈 째지고, 코 납작한 한국 사람이 몇 백년 전 서구 사회에서 생긴 이론을 부여잡고서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설레발을 치고 다닌다는 것이다. 이론은 특정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남의 것 그것도 몇 백년이나 된 것을 그대로 베껴와서는 마치 자기 것인양 으스대는 꼴이라니. 가관이다. 그러면서 같은 동네 사람들에게 야만적이다, 광적이고 비이성적이다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한국의 '후진성' 운운하는 '열등감'까지 보이니 참 안됐다.
"참된 먹물은 대중의 신뢰를 배반함으로써 참된 신뢰를 얻는다." 알았다. 혼자서 재미있게 놀아라. 이제 당신의 생얼을 다 봤으니 그걸로 됐다.
5. 맺으며
그래서 처음에 이코노미스트와 관련해서 쓰려고 했던 글의 제목은 < 트위터 날리는 나꼼수 앞에 곡물법 들고 선 이코노미스트>.
참고로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에서 1843년 제임스 윌슨(James Wilsom)에 의해서 설립됐다. 1843년에 앞.뒤로 영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지 찾아 보면,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더 명쾌하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陳의 전쟁을 쓴 지은이가 진중권을 비이성적인 대중의 광적인 폭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들을 계도하려는 전사라며 앞으로 내밀고서는 뒤에서 박수를 쳐대고 있는 꼴을 보자니, 당신도 참 불쌍하다. 그리고 이 글의 뒤에 숨어 눈치 보고 있을 낡은 지식인들이 누가 더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어제 열 받아서 낡은 진보가 우리나라를 말아 먹는다고 한마디 했는데, 이제 보니 아주 늙어빠진 닭대가리였구나.
이 글을 쓰면서 陳의 전쟁을 쓴 지은이에 대해서 최대한 언급하지 않은 것은, 결론은 비록 개떡 같지만, 자료를 충실히 잘 모은 것 같아서 고마워서이다. 개떡 같은 결론을 내려도 좋다만, 요 정도 자료라도 모아서 글을 쓸 수 있다면 언제든 환영한다. 닭대가리들, 이참에 다 커밍아웃해!
네티즌들이 선관위 시스템 개비에 대해서 소위 '진보' 진영의 언론들 조차도 왜 이렇게 조용한지 다들 너무 궁금해하고 의아해하고 있다.
다행인지, 비록 인터넷 언론이지만, 오마이뉴스의 채송무기자가 이 문제에 대해서 선관위에 문의를 해본 것 같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기사가 오늘 오후에 올라왔다.
전화를 한 것인지, 직접 찾아간 것인지, 메일로 질문을 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문의를 한 것인지는 기사에 나와있지 않다. 문제는 채송무기자의 보도 내용이 너무 단순하게 선관위의 입장만 그대로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꼼수는 선관위 직원과 LG CNS(정정 : 회사 이름이 잘못 거론되었습니다. 나꼼수에서는 LG 엔시스라고 한 것을 착각했네요. 정정합니다; 필자 주)직원이 만나서 시스템 전체 개비 문제에 대해서 논의 했다고 주장하면서, 정확한 날짜, 시간, 그리고 회의를 한 인원수까지 정확하게 언급했지만, 오마이뉴스 채송무 기자의 보도에는 이런 점에 대한 선관위의 해명은 없다.
필자가 오마이뉴스에 오늘 (2월 14일) 점심 시간 쯤 글을 보낸 후,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올라온 기사여서 남다른 관심이 갔다. 아마도 필자처럼 답답해 하고 있을 네티즌이 많은 것 같은데, 꼭 한번 들러서 읽어보시라. (아래 링크)
이왕 시작한거 네티즌들 궁금증이나 좀 풀어주게, 채송무 기자에게 좀 더 심도 있는 기사 부탁드리고 싶다. 그런데 이 기사가 포털 검색에는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올라오려나?
오마이뉴스 간 김에 나꼼수나 선관위 시스템에 관련한 기사가 있는지 찾아 보았다.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이프 잡지와 관련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쓴 글인 것 같은데, "김어준! 잘 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란 기사가 2월 13일 정식 기사로 올라가 있었다. 댓글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었다. 본 글 보다 댓글이 훨씬 더 재미있다. 꼭 들러서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아래 링크)
뉴스 사이트를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어제, 오늘 사이 재미있는 기사가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2월 13일에 강용석 의원이 안철수 원장을 "BW 헐값 인수 혐의"로 고발했다는 기사와 2월 14일 "거래소가 안철수 연구소에 횡령.배임 조회 공시를 요구"했다는 한겨레 기사였다.
이 글은 2월 14일 12시에 오마이뉴스로 보냈다. 처음 기사를 보낸 것이라 잘 몰라서 이것 저것 만지다가 12시 1분에 한번 더 올라갔다. 아직 검토 전이란 말만 뜨고 있는데, 식사시간이라 그러겠지. 나는 며칠 잠도 제대로 못자고 생활이며 몸이며 전부 엉망이 됐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건지 잘은 모르지겠지만, 선관위 시스템 개비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켜보겠다. 시민기자를 표방한 오마이뉴스 마저 이 사건을 파묻고 눈 감을 것인지.
- 선관위 시스템 개비를 막아야 한다 -
'선관위 서비스 장애 특검법 (일명 디도스 특검법)'이 2012년 2월 10일 국회를 통과했다. 특검법의 내용이 구체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선관위의 전체 시스템이 특검법에 의해 임명된 특검에 의해서 조만간 수사를 받을 것임은 확실해졌다 하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전국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나꼼수는 2012년 1월 31일(봉주 4회)과 2월 9일(봉주5회) 2회에 걸쳐서, 회사의 구체적인 실명까지 거론하며 선관위가 시스템 전체를 개비하고, 기존의 시스템을 완전히 폐기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두번째 방송에서는 시청에 근무하던 시스템 전문가인 사무관이 선관위로 자리를 옮겨서 이 일을 추진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다 짜와서 모든 법적인 절차와 비용은 다 해결해 줄테니, 4월 11일 총선 전까지만 자기가 짜온 대로 시스템 개비 작업을 끝내라고 주문했다고 주장했다.
나꼼수는 이러한 내용의 회의에 참석하고, 이 사업을 맡아서 할 회사가 LG CNS(정정 : 회사 이름이 잘못 거론되었습니다. 나꼼수에서는 LG 엔시스라고 한 것을 착각했네요. 정정합니다. ; 필자 주)라고 구체적인 실명까지 거론했다. 그리고 회의를 했던 정확한 일시, 장소, 참석인원을 언급했다.
선관위의 시스템은 앞으로 특검의 수사를 받을 범죄 사건의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에, 이러한 나꼼수의 주장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를 주관하는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앞장서서, 더구나 앞으로 특검의 수사도 받아야 하는 유일한 증거를 '완전히' 폐기처분하려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이상하다. 완전 조용하다. 으스스해서 무서울 만큼 조용하다. 보수 꼴통, 권력의 앞잡이로 손가락질 받고 있는 주류 언론이야 그렇다 치더라고, 소위 '진보'라는 진영의 지식인, 언론인 모두 다 하나 같이 어쩜 이렇게 조용한가.
네티즌들만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조바심 내며, 분노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현재 이들이 교환하고 있는 정보는 나꼼수가 방송에서 얘기한 내용 보다 더 많은 진전을 보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오로지 해직 기자들로 구성된 뉴스타파 만이 선관위를 직접 찾아가 선관위의 투표소 변경에 대한 후속취재를 했을 뿐이다. 뉴스타파는 특히 야권 지역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에서의 투표소 변경이 '정당한 사유' 는 커녕 선거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려 했다는 의혹만 강하게 불러 일으키고 있음을 동영상을 통해서 직접 보여주었다.
그게 처음이자 끝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시끌벅적하던 나꼼수 비키니 사건이라는 마녀사냥은 봉주 5회 방송 이후 곧장 김이 빠져 버렸지만, 선관위에 대한 나꼼수의 의혹 제기에 대해 보이고 있는 이러한 진보 진영의 무반응은 가히 엽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들은 선관위의 시스템 개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설마 선관위가 그렇게까지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꼼수 비키니 사건처럼 섹시하게 관심을 끌만한 사건이 아니라서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자신은 너무 바쁜 사람이니 이런 일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꼼수 같은 잡놈들이 하는 얘기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신의 위신을 깎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너무 유명해져 버린 나꼼수를 따라가면 인기나 끌려는 오지랍으로 보일까 두려운 것일까. 그동안 진보 지식인, 진보 언론인으로 감내해야 했던 고생들이 나꼼수 때문에 모래처럼 무너져 버리고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뜨고 있는 나꼼수가 미워서 무시하고 싶은 것일까.
그 이유야 어떻든 이들의 행태는 한 일반 시민, 한 일반 블로거에 불과한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위험해 보인다.
이들은 현 정부가 특검의 수사 대상이자 범죄 행위의 유일한 '증거'마저 없애버리려 하고 있는데도, 더욱이 이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가 싫은가. 미운가. 이 잡놈들의 천박한 잡소리 보다 못한 정보력과 논리적 사고 능력은 둘째치고, 이제는 나라를 말아먹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눈과 귀를 닫을 정도의 수준까지 곤두박질 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때 아닌가.
선관위가 이렇게 벌건 대낮에 당당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총선에 대해서, 대선에 대해서 떠들어 대는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선거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여태 낡은 보수를 욕했었는데, 낡은 진보가 나라를 말아 먹는구나.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같이 합심해서 대한민국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지 않도록 힘을 모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참조>
선관위는, 그럴리가 없기 때문에, 디도스 특검법이 수사하려는 범죄 행위의 진범이 아닌 제3자라고 믿고 싶다. 그러니 선관위의 시스템 개비 행위는 형법 제 155조의 증거인멸죄에 해당한다. LG CNS(정정 : 회사 이름이 잘못 거론되었습니다. 나꼼수에서는 LG 엔시스라고 한 것을 착각했네요. 정정합니다 ; 필자 주))도 마찬가지이다. 진행하고 있던 시스템 개비 사업을 당장에 멈추지 않고, 시스템에 손끝 하나라도 댄다면 이들도 같이 ''증거인멸죄'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선관위가 증거인멸죄를 범하면서까지 기존의 시스템을 폐기하고 시스템 개비를 하려 한다면 바로 "내가 범인이요" 라는 소리다. 형법은 범죄인이 자신의 범죄 증거를 없애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하여 반드시 "타인"의 형사사건 혹은 징계사건이어야 증거인멸죄의 구성요건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LG CNS( 정정 : 회사 이름이 잘못 거론되었습니다. 나꼼수에서는 LG 엔시스라고 한 것을 착각했네요. 정정합니다. ; 필자 주)와 선관위는 적어도 특검이 끝날 때까지 선관위 시스템에 털끌 하나도 손대서는 안된다.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 은닉, 위조, 또는 변조하거나 위조 또는 변조한 증거를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155조)
드디어 '선관위 서비스 장애 특검법( 일명, 디도스 특검법)'이 통과되었다. 이제 선관위 시스템 전체는 이 특검법에 의해서 지명될 특검이 앞으로 수사해야 할 범죄행위의 유일한 '증거'이다.
증거인멸은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대한 증거를 없애는 것이다. 범인이 자신이 저지른 "자기사건"에 대한 증거를 없애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전제에서 증거인멸 죄는 "타인"의 사건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러므로 만약 선관위가 앞으로 특검이 수사하려는 범죄 행위에 관련이 없는 제3자라면, 선관위 시스템 전체를 개비하는 행위 자체가 "증거인멸"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선관위가 특검이 수사하려는 범죄 행위의 진범이라면, 증거인멸죄는 적용될 수 없다. 단지 "내가 범인이요" 라고 말하고 있을 뿐.
즉, 선관위가 시스템 개비 작업을 계속 진행시키는 그 자체로 "증거인멸"이던, "자기사건"의 범죄 현장에 다시 나타나 증거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든, 둘 중에 하나라는 의미이다. 특검을 지휘할 검사가 임명되기 전에라도, 아무나 잡으면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LG CNS(정정 : 회사 이름이 잘못 거론되었습니다. 나꼼수에서는 LG 엔시스라고 한 것을 착각했네요. 정정합니다 ; 필자 주)도 마찬가지이다. LG CNS(정정 : 회사 이름이 잘못 거론되었습니다. 나꼼수에서는 LG 엔시스라고 한 것을 착각했네요. 정정합니다 ; 필자 주)는 당장 선관위 시스템 개비 사업에서 손을 떼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증거인멸이다. '일반인'으로서 당연히 "예상할 수 있을 만한 범위"를 넘어서 이상하다고 느낄 만한 정황이 충분한데도, 총선을 코 앞에 두고 이렇게 급하게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선관위의 시스템 개비 사업에 협조해서 선관위 시스템에 손을 댄다면, 당신도 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은 헌법 기관이기 때문에, 헌법 제114조 5항에 따라,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그 지위를 헌법에 의해 보장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 그 직무수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에는 헌법 제65조에 따라, 개인적으로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고, 국회에서 탄핵소추될 수 있다.
선관위 시스템 개비를 당장 멈추어라. 너희들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을 위반한 범죄인들이다.
아직도 아무런 입질이 없다. 선관위 시스템 개비 시도에 대한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또 나꼼수가 해준 얘기에서 한 발걸음도 못나가고 있다. 당장 선거가 코 앞인데, 이거 나 혼자만 이렇게 마음이 급한건가.
어찌된 일인지 보수 언론이나 소위 진보 언론이나 하는 소리가 아직도 다 똑같다. 프레시안에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나꼼수 비키니 실패한 농담 운운하는 글이 올라온다. 내 말 좀 들어보라고 투정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지만, 미안하다. 시간이 없다. 이 논쟁이 가진 핵심 문제는 논쟁의 쟁점이 뒤죽박죽 얽혀버렸고, 그 얽힌 실타래가 곧이어 소위 보수꼴통 언론의 말장난에 놀아나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문제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답답해서 대강이라도 좀 뒤져봤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관련 법조문 뒤져보는 일.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할 수 없고, 관련 법령을 제대로 찾은 건지도 모르겠고, 쩝. 그래서 그냥 혼자 소설을 써봤다.
내 수박 겉핧기 소설의 제목은 "선관위 시스템 개비 대작전의 합법성." 선관위가 4월 총선 전에 시스템 전체를 개비 하려한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저렇게 무리를 해서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시간이 너무 없잖아. 보통 관공서 공사는 입찰을 통해서 하고, 공무원들 도장 찍는거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니,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리고 왠지 그렇게 억지로 급하게 밀어 붙이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법 조문 몇 개 뒤져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두달이던 한달이던 선관위가 용역을 주려는 LG CNS(정정 : 회사 이름이 잘못 거론되었습니다. 나꼼수에서는 LG 엔시스라고 한 것을 착각했네요. 정정합니다 ; 필자 주)가 시스템 변경 작업을 끝낼 수만 있다면, 선관위의 시스템 개비 대작전은 합법적으로 막을 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 선관위는 경쟁 입찰에 의하지 않고, LG CNS(정정 : 회사 이름이 잘못 거론되었습니다. 나꼼수에서는 LG 엔시스라고 한 것을 착각했네요. 정정합니다 ; 필자 주)라는 특정 사업체를 지정해서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 7조 (계약의 방법)는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일반경쟁에 부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관공서의 용역 계약은 보통 경쟁 입찰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조항 단서에 "다만, 계약의 목적,성질,규모 등을 고려해서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해서 참가자의 자격을 제한하거나 참가자를 지명하여 경쟁에 부치거나 수의계약에 의할 수 있다. " 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들어가보면, 제26조 (수의계약의 의할 수 있는 경우)가 쭉 나열되어 있다.
선관위가 시스템 개비 작업을 맡기려고 하는 LG CNS(정정 : 회사 이름이 잘못 거론되었습니다. 나꼼수에서는 LG 엔시스라고 한 것을 착각했네요. 정정합니다 ; 필자 주)는 현재 국내 최대의 SI 업체로서,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필요한 업무처리 시스템을 구축,유지·보수해주는 일을 주로 하고 있고, 특허 출원도 가장 많은 업체라고 한다. ( 이 내용은 LG CNS에 대한 것입니다 : 필자 주)
그러니 여지껏 정부와의 수의계약이 전혀 없었을 것 같지 않다. 이전에 수의계약을 맺은 전례가 있다면 그대로 법조문을 끼워 맞추는 것은 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시행령 제26조가 2010년 7월 21일, 2011년 10월 28일 그리고 2011년 11월 23일, 이렇게 3차례 계속 개정이 되었다는 점이다. 법령과 달리 시행령은 개정 전의 내용을 인터넷상으로 확인해 볼 수 없었다. 변경된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면, 더 명쾌하게 소설을 쓸 수 있을텐데, 아쉽다. 이런 점 때문에 소위 전문가나 기자들의 손길이 필요한 데 말이다. 답답한 양반들.
2011년 11월 23일 가장 최근에 개정된 내용을 보면, 시행령 제26조 제1항 1호에는 "경쟁에 부칠 여유가 없거나 경쟁에 부쳐서는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로서 다음 각 목의 경우" 로 규정하고 있다. 가 목에서 "....긴급복구가 필요한 ....,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경우" 라고 되어 있고, 제2항은 "특정인의 기술이 필요하거나 ... 경우 등 경쟁이 성립될 수 없는 경우로서 다음 각 목의 경우"라고 하고, 마 목에 "특허공법을 적용하는 공사 또는 .... 을 적용하는 공사로서 사실상 경쟁이 불가능한 경우"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조문 어딘가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2. 대규모의 선관위 시스템 개비 공사 대금 문제없다.
문제는 시스템 개비 공사 대금인데, 선관위 시스템 전체를 그렇게 급하게 개비하려면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번 한명숙과 오세훈과의 선거 결과가 너무 박빙이었기 때문에, 이번 나경원과 박원순과의 선거는 야권 강세 지역의 투표소만 좀 손봐서 투표율을 떨어뜨리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선관위 디도스 공격을 가장한 DB 연동 끊기 쇼가 연출된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한편에서는 이번 서울 시장 선거의 부재자 투표 결과가 지역의 특성에 상관없이 모든 지역구에서 골고루 10% 정도 나경원이 승리한 것으로 나와서, 혹시 부재자 투표함에 손을 댄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선관위 시스템 전체를 개비하려는 계획은 이번 서울시장선거가 끝나고 디도스 검증쇼가 실패하자 부랴부랴 추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대규모의 공사를 이렇게 빠른 시일 내 끝내려면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필요할텐데 어쩌려는거지 싶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 없어 보인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제18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비)에 의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경비는 독립하여 국가예산에 이를 계상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 공사 대금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경비로 포함시켜서 미리 예산으로 받아 내지 않았다고 해도,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 20조 (회계연도 개시전의 계약체결) 를 근거로 "회계연도 개시전에 당해 연도의 확정된 예산의 범위안에서 미리 계약을 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발로 쓴 소설에 의하면 LG CNS정정 : 회사 이름이 잘못 거론되었습니다. 나꼼수에서는 LG 엔시스라고 한 것을 착각했네요. 정정합니다 ; 필자 주)가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혹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못하겠다고 하지 않는다면, 선관위의 시스템 개비 대작전은 공사를 후다닥 시작해서 공사 대금 지급하기까지 별 문제없이 합법적인 사업으로 끝나게 된다.
멀쩡한 시스템을 다 들어내고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으면서 일을 만들고 있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안그래도 한쪽에서는 선관위 디도스 특검을 하네 마네 떠들어대고, 한쪽에서는 10.26 부정선거 사건이라고 딱지를 붙여서 놀려대고 있는데, 경찰이나 검찰이나 이 똥개들이 바짝 엎드려서 여전히 주인님 손끝만 쳐다보고 있는 꼴이 참 가관이다.
각하 라인에서는 주진우 잡아 넣으려고, 경찰이 앞장서서 "나경원 피부숍 550만원 사용", 뭐 이따위 광고나 해대고 있고, 박그네 라인에서는 안철수 털고, 박경철 털고 아주 난리가 났다. 이 터는 작업은 검찰이 하고 있으려나? 이런 건 고소,고발이 들어간게 아니까 소위 '인지' 수사라는 건가? 이 똥개들의 범죄 '인지' 능력은 언제봐도 참으로 웃기다. 한 국가의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선관위가 지금 수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어쩜 이렇게도 모르쇠하고 있는지. 국가의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기관 하는 짓이 딱 더도 덜도 말고, 부자 조폭 두목 집 지키는 꼬붕이 경비원 같다.
일단은 선관위가 4월 총선 전에 시스템을 개비하겠다고 마음먹고 덤벼들면 막을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정치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수 밖에. 의회에서 문제 제기해서, 선관위 위원장 불러다가 투표소 변경된 것, 시스템 개비 진행사항과 앞으로 계획 등 꼬치꼬치 캐묻고 따져서 꼼짝 못하게 만들어 놓고, 그리고 언론에서 막 때리고. 얼마전에 선관위 디도스 특검을 하자고 합의했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특검에 대비해서라도 선관위 시스템은 손대지 않아야 한다고 못을 박는 방법도 써볼 수 있을 것기도 한데. 걱정되는 것은 특검한답시고 또 괜시리 정신줄만 빼놓고서는 이번 10.26 부정선거를 묻어버리고 면제부만 주는 역할을 하지 않기 바랄 뿐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선거관리위원회법>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규칙>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래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사무를 총괄하는 사람은 4급 일반직공무원 직급인 "사무국장"이었는데, 2010년 1월 25일 개정으로 "사무국"이 "사무처"로 바뀌면서 2급 혹은 3급으로 지위가 상승했다. 이 외에도 <선거관리위원회법>과 시행령 그리고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여기저기에 각하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개정된 조문들이 눈에 띄었다. 이 법조문 개정이 더 민주적이고 더 공정한 선거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 아닐 거라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Corporate governance explains South Korea’s low stockmarket ratings
남한 주식시장의 저평가는 기업의 지배(구조) 때문
Feb 11th 2012 | Seoul | from the print edition
IT IS sometimes asserted that low South Korean equity valuations stem from the threat of instability in North Korea. That explanation looked a lot less convincing after the death of Kim Jong Il in December, when the KOSPI 200 index of leading shares and the won, the South Korean currency, both quickly shrugged off the news.
남한의 주식이 저평가 받는 이유가 북한의 불안정성이라는 위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때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이러한 설명은 설득력이 그렇게 큰 것 같지 않다. 주요 주식의 코스피 200 지수와 남한 통화인 원, 이 두개가 동시에 북한발 뉴스로부터 오는 불안감을 빠르게 떨쳐냈기 때문이다.
So what is the source of the “Korea discount”, which means that the KOSPI has a forward price-to-earnings ratio of under ten, below most other Asian stockmarkets (see chart)? There are a few possibilities. The national economic model is still built on exports, often in highly cyclical industries such as shipbuilding. The capital structure of South Korean firms has historically been debt-heavy.
그러면 코스피의 주가 수익율이 10 보다 적고, 다른 대부분의 아시아 주식시장의 가치 보다 적게 평가되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무엇인가? (차트를 보라) 이런 현상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국가 경제 모델이 여전이 경기순환 주기에 매우 예민한 선반건조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남한 기업들의 자본 구조가 역사적으로 부채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But the prime cause of the discount is more likely to be poor corporate governance at the family-run chaebol conglomerates that dominate the economy. Nefarious schemes to pass on control to sons, avoid taxes and exploit company assets for the benefit of family members are widely discussed in private. They are also lambasted abroad: a 2010 survey by CLSA, a broker, placed the country third-from-bottom in Asia on governance, ahead of only Indonesia and the Philippines.
하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은 일가가 경영하는 재벌 그룹이 경제를 장악하고 있고, 이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약하다는 것이 더 큰 이유 같다. 일가 식구들의 이익을 위해서 탈세를 하고 기업의 자산을 횡령하고 그리고 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것 같은 부도덕한 일들이 몰래 폭 넓게 계획되고 있다. 남한의 재벌 기업들은 해외에서도 비난받고 있다. CLSA가 실시한 2010년 조사에 의하면, 남한은 아시아 기업경영 부문에서 꼴찌에서 3위를 차지했다. 남한 밑으로 있는 국가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뿐이다.
. nefarious : Infamous by way of being extremely wicked
. lambast : to reprimand or scold
The issue is now also getting more of an airing at home. A recent report by Tongyang Securities, a broker, drew an explicit link between Korea’s low equity valuations and the practices of “tunnelling” and “propping”, which benefit insiders at the expense of smaller investors.
현재는 이런 문제가 남한 국내에서 더 많이 알려지고 있다. 위탁투자 중개업자인 동양증권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는 한국의 주식가치가 저평가 되는 것과 내부자(재벌 일가의 가족들 ; 역자 주) 들의 이익을 위해서 소액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터널링" 과 "프랍핑" 과 같은 재벌의 관행과 서로 명확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 tunneling : 자본시장의 상황이 좋을 때, 상장회사가 자신에게 스스로 피해를 입히면서, 그 상장 회사의 내부인들(재벌 일가)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내부자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거래 (역자 주)
2. propping : 자본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 회사가 상장 폐지될 위기 혹은 회사의 재벌 일가가 새로운 자본 증식을 할 수 없을 위기에 처하게 된 상황일 때에도, '상장'된 회사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재벌 일가가 사적으로 이익을 계속 챙기거나 혹은 회사가 붕괴하지 않고 자본시장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행하는 내부자들(재벌 일가)와 자회사들 사이의 거래 (역자 주)
Tunnelling is the awarding of contracts to firms owned by family members. Chaebol heads typically own only a small portion of their firms, but are able to maintain control through complex cross-holdings; tunnelling offers a means of exploiting that control to get richer, quicker. In 2007, for instance, the Fair Trade Commission, an official watchdog, fined Hyundai Motor for, among other things, giving 1.3 trillion won ($1.4 billion) of business to Glovis, a firm owned by the son of Hyundai’s chairman—without any tendering.
터널닝은 재벌 일가의 구성원이 소유한 회사에게 계약을 주는 것이다. 재벌 회장들은 전형적으로 자신 소유의 회사에서 가지고 있는 지분은 작다. 하지만 이들은 자회사들과의 사이에 맺어진 복잡한 주식 보유 관계를 통해서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터널링" 관행은 재벌 일가가 더 빠르게 더 부자가 되도록 그 통제권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2007년, 국가 감독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 재벌 회장의 아들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 현대글로비스(Glovis) 에 현대자동차(Hyundai Motor )가 어떠한 입찰도 없이 1조3천억 원(13억 달러)에 달하는 사업계약을 주었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했다.
Propping is similar to tunnelling, and means that unviable units get financial support from sister companies. But it is no less damaging to small investors. If company insiders are able to misuse shareholders’ funds at will, would-be investors will reduce their expectations of future cash flows and thus attach lower valuations to stocks.
프랍핑은 터널링과 비슷하다. 회생이 불가능한 재벌 그룹내의 개별 기업이 자매회사들로부터 금융지원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소액 주주들에 미치는 피해가 터널링 보다는 적다. 만약 회사 내부자가 주식 소유자들의 자금을 자기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다면, 이 회사에 투자를 하려던 투자가들은 미래의 현금 유동성에 대한 기대를 낮출 것이고 그러면서 이 회사 주식의 가치는 저 낮게 평가될 것이다.
Other allegations are even more serious. On February 3rd Hanwha Group announced in a regulatory filing that its chairman, Kim Seung-yeon, was among several officials being investigated for alleged embezzlement. Chey Tae-won, the chairman of SK Group, was indicted in January over the disappearance of 99 billion won from company coffers, as part of a scheme allegedly planned by his brother to cover futures-trading losses. Mr Chey denies the charges. The Federation of Korean Industries, a chaebol pressure group, has urged prosecutors to go easy on Mr Chey. They say that punishing him would harm “entrepreneurial spirit”.
재벌에 대한 다른 혐의는 훨씬 더 심각하다. 2월 3일, 한화그룹은 그룹 회장 김승연이 횡령 혐의로 다른 몇몇의 임원들과 함께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정기 기업공시에서 밝혔다. SK 그룹 회장 최태원은 회사 자금 99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1월에 기소되었는데, 나중에 발생할 거래상 손해를 덮기 위해서 그의 남동생이 계획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기획의 일부였다. 최 회장은 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재벌의 압력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검사들에게 최 회장에게 선처를 베풀도록 부추기고 있다. 그들은 최 회장을 벌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을 해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Mr Chey has had previous scrapes, having been convicted of a billion-dollar accounting fraud in 2003. He eventually received a full pardon from the president and was also chosen to represent the nation during the 2010 G20 summit, leading a meeting of international chief executives. Lee Kun-hee, the chairman of Samsung, received a similar pardon in 2009, having been found guilty of tax evasion, and was picked to front South Korea’s bid for the 2018 Winter Olympics. Yujeon mujwai, mujeon yujwai—an old expression meaning “money = innocence, no money = guilt”—is enjoying a resurgence in popularity.
최 회장은 2003년에도 십억 달러 규모의 분식회계로 기소된 적이 있는 전과가 있는 사람이다. 결국 그는 대통령의 사면으로 완전 복권되었으며, 2010년 G20 정상회의에서는 국제적인 각국 정상 모임을 이끄는 남한측 대표로 선출되었다. 삼성 그룹의 회장인 이건희는 세금 탈루로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2009년 최 화장과 비슷하게 사면을 받았고, 2018년 동계 올림픽 유치 대표단에 임명되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돈이 있으면 무죄이고, 돈이 없으면 유죄가 된다"라는 의미의 이 오랜 문구가 다시 부활해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화자되고 있다.
The irony is that the largest chaebol are models of efficient production and are enjoying a golden period. Their success, say proponents, vindicates the family-run approach to business. Their ownership structure means they have no need to appease short-termist investors or to meet quarterly earnings targets; instead, they can invest for the long run. Smaller shareholders have reason to feel less thrilled.
아이러니는 이런 최대 규모의 재벌이 효율적인 생산 모델로서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 옹호론자들은 재벌 기업의 성공은 일가의 기업 운영 방식(의 효율성 ; 역자 주)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재벌의 소유권 구조는 그들이 단기 투자자들을 끌거나 혹은 분기별 수익 목표를 맞출 필요가 없게 해준다. 그래서 재벌은 대신에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 (서구 선진 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신흥개발국가들이 누리고 있는 경제 성장에 ; 역자 주) 소액 주주들이 별로 신나하지 않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바리맨이 된 김감퇴, 주키니, 이 두사람이 일주일 동안 너무 괴로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절대로 아무 말 하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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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사건이 너무 재미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 이 건에 대해서 정리를 해야 되겠다. 그 이유는 좀 있다 얘기하기로 하고.
어쨌든 대단히 파편된 정보들, 정보의 파편들, 그 파편된 정보들의 잘못된 배열, 그러면서 만들어지는 이상한 인과관계, 이런 것들이 막 얽히면서 주키니, 김감퇴라는 가공의 인물이 탄생했다.
예를 들면 어떤 식으로 인과관계가 얽히냐 하면, 비키니 사진이 20일날 올라오니까 그것을 보고 다음날 21일 봉주 3회에서 성욕감퇴제를 먹고 있으니 수영복 사진을 보내달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우리보고. 하지만 21일 방송분은 18일 녹음된거라고. 인관관계가 성립 안되잖아.
봉주 3회에서 수영복 이야기 나온 건, 전봉주 전 의원이 입감되기 전에 우리끼리 편지위원회 수영복 사진 분과 만든다고 막 낄낄거리며 농담한 적이 있었는데, 봉주 4회 방송에서 이 농담에 이어서 한 말이었던 것. 그러므로 봉주 3회에서 언급했던 얘기는 비키니 시위와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였다. 뒤바뀐 인과관계와 사라진 맥락, 이런 것들이 막 섞여서 뭔가 실제하지 않는 인물이 만들어 진거야. 그리고 이 가상의 인물들과 막 싸우는 거야. 즉, 쉐도우 복싱 상황이 벌어짐. 결국 나꼼수는 성감수성이 졸라 둔한 마초가 되어 버린 것.
" 그런데 왜 말하지 못하게 해? 형은 나빠. 시발." 김총수는 목사아들 되지와 주기자에게 해명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주문. 왜냐? 모든 논란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그래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이야기가 다 나와야 돼. 그래야 본질이 뭔지, 누가 어떤 속셈인지, 그리고 수준과 바닥도 다 드러난다고, 그걸 다 봐야 돼. 그러한 과정을 다 거쳐야 지불한 비용에 상응하는 사회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당장 오해를 좀 받더라도 그래서 기다려야 해. 그래서 해명을 못하게 한거야.
그런 면에서 이 논란은 더 가도 돼. 아직은 저 세 놈의 남자 새끼들이 마초라서 그랬다. 여기서 한발자욱도 아직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저 새끼들은 마초가 틀림없다. 마초, 쇼비니스트, 혹은 성적 감수성이 졸라 둔한 새끼들, 남자 새끼들이라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이 한계 내에 있다고 보는거지. 그리고 그 틀에 맞춰서 욕을 한다고. 쉐도우 복싱!
실제로는 우리를 쇼비니스트로 만드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하고 있는 짓을 해석할 틀, 언어가 없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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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힘센 놈하고만 싸우다가, 자기가 항상 약자라고 생각해서 졸라 도와줬던 여성단체로부터 공격을 받는거야. 그런데 한마디도 대꾸하지 말라고 하니까 억울해서 죽는거야. 그래서 주 기자는 이런 혼돈의 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 몽테뉴의 글을 읽고도 그래도 잠이 안오는데, 되지는 혼자 잠만 잘 잤음. ㅋ
1.
이런 이슈에 여성들은 남성들 보다 예민할 권리가 있다. 왜? 오랜 세월 이 문제에 관해서는 명백히 약자였기 때문에. 그것은 남성들과의 관계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것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들이 잘못해온 역사가 있다. 그리고 피해자의 역사가 있다.
2.
그럼 여성은 자신의 몸을 정치적 표현의 도구로 쓸 수 없나? 그건 본인이 결정하는거지. 당연하지.
그럼 이제, 주키니, 김감퇴는 성희롱 의사 있었나? "절대 없었다." 김 감퇴는 사실 자기는 여권주의자라고 주장 " 아내한테 큰 소리라도 한번 쳐보고 그런 소릴 들으면 억울하지는 않겠다"고 하소연. 아내한테 큰 소리를 쳤나 안 쳤나는 관계가 없어. 큰 소리 안쳤었도 성희롱 할 수 있는거야. 그러니까 성희롱 의사가 있었다, 없었다만 하면 돼. "아~ 알았어. 성희롱 의사 있었겠습니까. 없습니다!"
으흐흐흐...시발 ...보통 남자들이 다 없었다 그래. 하하하하하... "아, 시발 근데 왜 물어봐????
성희롱 의사가 없었다는 거 알아. 그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각하에게 던지는 메시지거든. 그건 이따 설명하고, 자, 그러면...
3.
그러나 성희롱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기준으로 판단한다.
당연하지! 아, 근데 사람들이 우리가 이걸 모를 거라고 생각해. 이런 건 대학교 교양강좌 개론 수준이잖아. 주 기자, "참고로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누나들한테 이런 교육을 받았다"고 강조. 김총수, 아니, 우리가 잡놈이기는 한데 무식하지는 않아. 그 정도 지성도 없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와? 시발! 우릴 너무 졸로 본다!
이런 거죠. 직장 상사가 성희롱 의사가 없었어도, 부하 직원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그러면 성희롱이라고 법적으로도 판단해. 왜냐? 왜 일방의 감정을 법적 판단의 근거로 인정을 해주느냐? 그 이유가 있어요. 부하 직원은 자기가 성적 수치심을 느껴도 상사가 줄 수 있는 불이익, 그것을 두려워해서 문제 제기에 소극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성적 수치심을 정당하게 문제 제기할 수 없는 권력관계나 불평등이 있을 경우에.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문제제기 하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회사에서 잘리거나,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그런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아무 일도 아닌데 니가 왜 그러냐. 다들 괜찮다고 하는데. 이런 소리를 듣거나한다. "특히 우리 사회가 이렇습니다." 그래서 위계에 의한 폭력이 성립한다. 이런 판단이 가능한 이유는 성이 가진 정치성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거 다 알아. 우리가 천박하기는 하지만 무식하지는 않다니까. 그런데 우리와 비키니 사진을 올린 그녀 사이에는 아무런 권력관계가 없어요. 그녀에게 비키니 사진을 올리라고, 그녀가 원치 않는데도 말할 권력관계도 없고, 그녀가 수치심을 느끼는데도 문제 제기를 하면 불이익을 줄 권력관계도 우리한테는 없어요.
오히려 이 당사자는 비키니 사진을 올리라고 해서 올린 것도 아니었다. 이걸 사람들이 거꾸로 알고 있는데.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그렇게 보도해서요." 아. 그 새끼들은 알고도 그러는 거야. "나쁜 새끼들!" 우리는 프리봉주에 비키니 사진을 올리라고 한 적이 없다고! 그거는 먼저 본인이 자발적으로 올린거예요. 이건 선,후 관계만 바꾸면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되거든. 이 분도 의사표현을 나중에 했잖아. "아니, 내가 그런 유치한 농담도 소화 못하는 사람인 줄 아느냐? 그러면서 내 자발적 의지를 왜 폄해하느냐?" 라면서 화를 냈잖아. 자기가 성희롱 당한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여기서는 가해자도 없고, 피해자도 없고, 권력관계도 없어요. 그럼 성희롱 재판은 끝나는 거야.
그럼 남는게 뭐냐? 남는 건 구경꾼! 사건 초기에는 비키니 응원 방식을 성토하는 분위기도 있었어. 여성이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한다. 불쾌할 수도 있다. 근데 자신이 불쾌하다는 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제약할 근거는 아니거든. 그러니까 이런 이슈에 예민할 여성의 권리가 있는 만큼, 또 자신의 몸을 정치적 표현의 수단으로 쓰는 표현의 자유도 중요한 권리야.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여성의 성에 대해서 보수적인 나라에서 이런 시위는 그 자체로 매우 통쾌한 일이예요. 그러니까 초기의 문제제기는 비키니 응원을 하는 여자는 자신이 골빈 여자가 아니라는 입증을 해야 겨우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그런 부담을 만들어 냈다.
여성 인권을 말하면서, 여성이 자신의 몸을 다루는 방식을 보수화시키는데 기여했다고. 이게 사실은 과거 페미니즘의 아이러니이기도 해요. 생각해 보면, 초기 페미니즘 이론은 피해자 프레임으로 출발했단 말이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피해자였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모든 시대, 모든 상황에 적합하지는 않다! 야! 이 되지야 졸지마, 들으란 말이야. 아는 얘기라도. ㅋ
이 사건에서는 특히 더 그래. 우리가 성희롱범이 되어 가는 과정이 자신의 몸을 정치적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그 여성, 그 여성을 골빈 년으로 만드는 폭력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피해자 프레임이 초래할 수도 있는 사회 집단적 피해이다. 오늘, 시발, 너무 어렵나, 말이? ㅋ
그래서 이 정도 논란이 있으면, 피해자 프레임도 수정, 보완이 필요한 때가 왔다. 이런 논쟁도 있을 줄 알았어. 그런 논쟁이 뒤따라 와 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러면서 기다렸는데. 원래 보수 매체, 조중동은 잘 걸렸다. 시바, 이러면서 막, 앞뒤 좀 바꿔가지고서 막 까도 돼. 원래 그런 애들이잖아. 근데 진보 매체는 처음에는 아. 이거 긴가민가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 사실관계가 이랬구나 알고 나서는 논의를 이 정도 수준까지 끌고 갈 수 있어야 되는데, 전화 한 백통 받았는데 전부 다 "사과하실건가요?" 시발. 그래서 되물어 보잖아. 어떻게 된건지 아냐고, 방송도 안 들었어 대부분. 이게 어떤 대목에서 나온 말인지도 몰라.
그러면 이 사건 정리가 다 끝났느냐. 아직 하나가 남았다. 이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인데. 그 다음 단계에서 나온 얘기가 뭐냐 하면 우리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다. 코피 팍! 이거 아니냐고. 난 이게 가장 흥미로와요. 아니 인간이 자신 이외의 인간을 대상화하지 않는 경우도 있나? 남자도 여자도 서로를 성적으로, 경제적으로 끊임없이 대상화한다. 타자와의 관계로. 우리 모두가 그래! 일정 정도. 우리도 그 사진을 처음보고서는 순간적으로 그 비키니 사진을 올린 그녀의 몸매를 보고 대상화를 했어. 우~와 했잖아. 이 자식들아. "네, 우~와 한마디 했죠. 근데 그게 다였어요." 그게 다였다고. 하지만 그건 일초도 안돼. 우린 고삐리가 아냐. 우리가 진짜 그 일초 후에 졸나게 떠들었던 건 뭐냐면 "야, 우리나라도 드디어 이런 시위가 가능하구나. 발랄하다. 통쾌하다." 그러면서 졸나게 떠들었다고. 역시 나꼼수 팬은 발랄하고 앞서간다 이렇게 생각했었죠. 순간적으로 그녀의 생물학적 완성도에 탄성을 질렀어. 라인이 예쁘다. 근데 일초도 안 걸렸어. 우리 시발 고삐리 아니잖아. 우리 다 마흔 넘었어. 가슴 사진 백만번 봤어, 우리. 참내 결혼도 다 했어. "갔다 온 사람도 있어요." 우리가 고등학생이 아냐. "전 사진 많이 보진 않았지만 결혼했어요."
그러니까 성적 대상화. 당연히 일어나지. 순간적으로. 우리 다 사람이니까.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런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같은 뜻을 가진 동지로도 감정이입을 한다고. 당연히. 그러니까 진짜 중요한 게 성적 대상화를 했다 이런 관념적 단어들이 아니예요. 아, 그럼 그 사진 보고 우나? 시발. 그럼 가슴만 가려?? ㅋ
몸매에 대해서 어떤 감정이라도 느끼면 성적 대상화가 되므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그러면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나? 조또. 씨. 이게 진짜 문제는 욕망을 가진 자연인이면서도 상대를 정치적 동지로 연대하고, 또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등한 인간으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느냐, 그런 능력이 있나 이거야! 그거 진짜 중요해! 진짜 중요한 건 그거거든.
그러니까 상대를 이성으로 대상화하면서도, 대등한 인간으로 감정이입하는 게 돼. 왜 두가지가 분리되야 돼? 이게 완벽하게 분리가 되는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나? 델꾸와봐. 시바. 그게 어떻게 완전히 분리가 돼? 거짓말 좀 하지마. 그 두개가 공존한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섹시한 동지는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어. 섹시한 동지, 있어~~~ 그게 왜 없어?! 시발. 왜 안돼?!
우리가 잡놈인 건 맞는데, 지적 수준은 높아. 성평등 지수 졸라 높아요, 우리는. "저는 잡놈도 아니예요, 사실" ㅋㅋ "저는 가장 많이 공부했습니다. 둘다 학사지만, 저는 박사과정 중입니다." "조용히 해, 이 돼지야!!!" ㅋ
그런데 이 일을 또 설명해줘야 해. 정봉주 수감 후에 왜 이렇게 성적 코드가 강화됐느냐? 이 성적 코드를 강화시킨 장본인이 바로 접니다. 다 제가 시킨거예요. 다 내가 시킨거야. 내가 나쁜 놈이다~~ "사실 저희가 교도소 가서 접견서를 쓰면서 편지를 하나 쓰는데, 그거는 봉도사한테 우리가 뭐 어떤 일이 있었다는 짧은 글이기도 하구요. 한편으로는 각하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한명이 이렇게 빠졌지만 발랄하게 잡스럽게 이렇게 잘 놀고 있다는 얘기인데, 제가 주로 펜을 잡고 두 명한테 이렇게 물어봅니다. 오늘 뭐 쓸거야?" 애로 코드 담당은 나야! "하나씩 부르라고 하면... "
우리가, 시바, 설명하는 김에 다 설명하자고. 그러니까 면회를 가면, 우리가 먼저 접견서신을 써요. 이 접견 서신서는 우리가 정봉주 의원을 면회하기 직전에 조그만 종이에다가 메시지를 써. 그러면 그 메시지가 우리하고 면회를 한 후에, 우리가 돌아간 후에 그걸 받아봐요. 그걸 쓸 때, 뭐, 여성부 관리명단을 제출하라느니, 뭐, 관리명단 쥐뿔도 없지, 물론, 실제로는. "우리 실체를 좀 얘기해주죠." "자기가 항상 지방에 가면 인기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가지고 광주하고 부산만 가면 뒤집어진다, 뒤집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그냥 광주, 부산에 지부가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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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희들이 얘기하면 다 변명처럼 들리기 때문에, 니네 둘은 그냥 조용히 있어야 돼. 다 변명으로 들려. 내가 설명해 줄게. 접견서신은 그런 용도입니다. 그런데 매일 가면 늘 서로 생각을 해요. 오늘은 뭘 쓸까. 그러면은 한마디씩 하게 되고, 그 때 이런 말들이 튀어나오게 된건데, 근데 그 접견서신은 의미가 좀 있어요. 어떤 의미가 있냐면, 우리가 면회를 하면, 그 면회 내용이 다 기록이 되가지고 보통은 보관만 되는데, 우리거는 각하한테 보고가 되요. 각하께서 모든 죄수들의 면회 내용을 관리하지 않습니다. 이거는 우리가 확인한 사실이예요. 이 면회 내용이 청와대에 보고된다는 것은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접견서신을 쓰고, 면회를 하면서 두가지 생각을 해요. 하나는 정봉주가 적어도 우리를 만나는 동안은 그리고 이 접견서신을 나중에 보는 동안은 자기가 감옥에 있다는 걸 잊고, 졸나 유치하게 우리하고 밖에 있을 때처럼, 낄낄거리게 만들고 싶다. 이게 하나가 있고, 그리고 두번때는 우리가 쓰는 것, 말하는 것 다 기록되서, 청와대에 보고되니까, 각하 그리고 각하의 팔들이 이거를 보고 듣고, 어떻게 하면 열 받게 만들까, 요 두가지, 열 받고, 당황하게 만들까. 요 두가지 생각에서 쓰거나 또는 봉주 동정을 만들죠.
예를 들어, 성욕 감퇴제, 이 발언 가지고도 난리가 났었잖아. 그래서 네가 김감퇴가 된거 아냐. 근데 이건 이렇게 된거예요. 물론 성욕 감퇴제 안 먹어요. 근데 먹고 있는 어떤 약에 그런 효과를 내는 성분이 있어. 그래서 우리끼리 면회하다 졸나 웃었어. 그러면 성욕 감퇴제를 먹는거네. 그런데 그것을 듣고 있을 각하와 그 팔들에게 우리가 쫄기는 커녕 그런 소재로 어떻게 노는지 잘 지켜봐라, 이 새끼들아! 하고 만드는 겁니다. 이게 성욕 감퇴제 코멘트의 실상이고, 그리고 대통령을 비판하다가 감옥에 갔는데, 그래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한 순교자, 그런 대우를 지금 밖에서 받고 있잖아요. 하지만 실제 감옥에 있는 정봉주는 오늘밤 자위를 할 것인가 말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게 정봉주를 감옥에 보낸 자들에게 보내는 진짜 엿이거든. 이런게 엿이거든. 이런 상황에서 조차 여전히 시시덕거린다. 그러면서도 싸울 의지를 절대 꺾지 않는다. 이런 새끼들은 진짜 잡놈들이구나. ㅋ
그러면서 접견서신서에 '관리명단' 이런 것도 나오는 거죠. 관리명단 쥐뿔도 없잖아. 부산, 광주만 가면 자기가 인기가 좋대잖아. "자기가 항상 주장하는게 서울에서는 자기가 좀 떨어지지만, 부산, 광주만 가면 자기가 최고라는데", 아무 근거도 없어. 그리고 자기가 숙대 강연에 가서 대박이 났다는 거 아냐. "본인 멘트로는 개교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이 왔다고" 우리가 우리끼리만 아는 농담 코드죠. 처음에는 숙대만 넣었는데 숙대가 너무 외롭잖아. 그러니 이대도 같이 넣자. 그래서 갑자기 뜬금없이 부산,광주, 숙대,이대가 나온 거야. 그래서 정봉주 의원이 굉장히 인기있는 사람처럼 보이라고, 각하의 팔들에게. 이것이 관리명단이 만들어진 전후 사정이야.
이게 어떻게 성희롱 의사가 있다고 연결될 수가 있겠어! 애초에 정봉주 전 의원과 그 서신을 읽을 우리 각하와 각하의 팔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인데. 그런데 이 접견서신에 뭐라고 썼는지 궁금해하니까, 우리가 공개한 거예요. 이게 앞뒤가 이래.
그런데 이게 각기 다른 시간 상황, 또 그런데서 만들어진 조각, 조각들이 막 꿰어져요. 이렇게. 막 이어붙여. 그래서 이렇게 나오더라고. "성욕 감퇴제를 먹고 있으니, 자위행위를 할 수 있도록, 비키니를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나오더라고! 아, 시발! "야, 이게 엮는게 뭐 예술의 경지인데, 엮는게." 그러면서 조선일보 같은데서는 의도적으로 그러지, 우리가 비키니 사진을 올리라고 했고, 그 비키니 사진을 뭐 어쩌고, 저쩌고 했다. 우리가 처음에 수영복 사진을 얘기한 적은 있어. 그게 언제냐하면, 정봉주 전 의원이 들어가기 직전에 편지위원회를 만들고, 그 밑에 수영복 분과를 만들고, 수영복 사진을 보내라, 이런 얘기를 정봉주 전 의원이 들어가기 전에 한 적이 있어요. 같이. 했어. 그러면서 내가 뭐라 그랬냐면, 특히 남자들 수영복 많이 보내라고! 시발. 물론 분과위원회 안 만들었지. 이런걸 누가 만들어? 그냥 재미있으라고 한 말이지.
그러면 이렇게까지 논란이 있었으니까, 앞으로 애로틱 코드, 유치한 성적 농담을 하지 않고, 얌전하게 앞으로 방송을 하기로... 약속을 ...드릴 것 같애? 푸하하하하하 !!!! 싫다! "좀 약속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졸나 유치한 성적 농담을 하면서 시시덕거리면서 그리고 절대 그럴리가 없는 각하와 함께 놀다가, 각하가 퇴임하시면, 그 때 사라질거야!!!! 쯧
더도 덜도 말고, 이게 사건의 전말이구요. 이 사건의 전말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좀 더 지켜봤으면 좋았겠다 생각도 해요. 저는. 여전히. 그래야, 완전히 우리가 어디 서있는지, 현재, 그 바닥과 한계와 우리 모두의 현 위치가 드러나요. 이런 이슈를 이 정도 수준에서 밖에 못 다루는구나, 혹은 이 정도 수준에서까지 다룰 수가 있구나, 이런게 다 드러나는데, 아직 다 안드러났어. 하지만 끊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주진우가 잡혀가면 안되기 때문에.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성희롱의 피해자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게나 시끌벅적 한바탕 진탕나게 벌어졌던 마녀사냥 굿판에 정작 피해자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이번 나꼼수 봉주5회 방송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2월 3일 경향신문에서 성희롱의 피해자라는 여성이 "나꼼수 비키니 사과는 나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완전히 파묻혀버렸다.
그렇게 이 사건의 피해자라는 한쪽 당사자의 진의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되었고, 다른 한쪽 당사자는 가해자가 되어서 일방적으로 변태 마초 꼴통이라는 낙인이 찍혀서 마녀사냥 굿판에 끌려 나왔고, 돌팔매질 당했다. 문제는 정작 이 사건에 관련된 정보의 파편들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어떤 인과관계를 가지는지, 피해자는 왜 굳이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한 진지한 조사나 고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남들이 다 던지는 돌 나도 한번 던져보자(?) 같은 분위기만 점점 더 짙어져갔다.
그렇게 구경꾼들만 정신없이 난리 부루스를 추고 있던 와중에, 삼국카페 같은 순진한 사람들이 이용당하고, 또 줄을 잘못 서고 있는 이 시대 선진 어뤤지 영어 교육의 본거지 숙명여대의 총학생회는 지 얼굴에 똥칠하는 줄 모르고 나꼼수 사과하라는 성명서까지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지난번 나꼼수 4회에서 지적했던 10.26 부정선거와 선관위 시스템 개비 시도 그리고 KTX 선물 주기 같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들이 다 묻혀버리고 있었다. 아, 이건 아닌데, 너무 불안했다. MBC 이보경 기자도 아마 이런 불안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목숨 걸고 자신의 비키니 응원 사진을 올리면서, 어디로 향해 달려가는지도 모르고 미친 듯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나꼼수 마녀사냥에 제동을 걸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우르르 정신없이 한쪽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을 때, 사건에 관련된 정보를 다 모아서, 논리에 맞게 정리해서 일반 독자들에게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아니었던가. 우리는 나꼼수 비키니 사건이라는 마녀사냥도, 그리고 이 사건으로 묻히고 있었던 정작 중요한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도 소위 진보 언론인이라는 기자들의 적절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은 뉴스타파 외에는 어떤 언론사도 직접 선관위를 찾아가 10.26 부정선거 사건에 대해서 취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믿고 싶지 않다. 그 잘난 소위 진보 언론들은 그저 나꼼수 비키니 문제만 붙들고서는 자신들의 적인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와 같은 소위 보수 언론의 말장난에 우리와 같이 놀아나고 있었다. 어떻게 진보 언론이라는 곳이 이런 중요한 사건을 이렇게나 철저하게 모르쇠할 수 있단 말이냐. 슬프다. 이게 정말 우리 나라의 소위 진보 언론의 수준이라는게.
그동안 이코노미스트 기사와 관련해서, 소위 진보 언론이라는 곳에서 나오는 이코노미스트에 대한 물신숭배 혹은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무책임한 기사들을 보면서 도대체 왜 이럴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화도 나고 답답한 적이 많았다. 이제 그 이유를 직접 체험한 것 같다. 그냥 수준이 이것 밖에 안되었던 것 뿐. 관련된 나꼼수 방송을 제대로 다 듣지도 않고 기사 쓴 기자 양반들, 분명히 있을 것이다.
도대체 나꼼수라는 저 잡놈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언감생심 서울시장 승리와 같은 달콤한 시간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소위 진보 언론이 보이는 이런 아마추어 같은 기자질에, 말로는 진보를 외치면서도 자신들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좁쌀만한 기득권도 못 내놓겠다고 아옹다옹하는 소위 진보 정치인들의 아마추어 정치질에, 이미 담론을 이끌어 갈 역할을 상실한지 오래된 썩은 냄새 진동하는 소위 철밥통 지식인들의 아마추어 말싸움 실력으로는 조폭 독재 정권의 똘마니로 승격하신 검새들의 미친 칼질과 소위 보수 언론의 프로패셔널한 선동질과 싸움 기술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나경원이 총선에 출마하면서 나꼼수 죽이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이들에게서 합법적인 규칙을 준수하는 싸움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나꼼수는 그래도 국가 권력의 어딘가에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을 지키려는 이 시대의 영웅이 실낱 같은 경계선 어딘가에 살아 남아 있으리라는 그야말로 실낱 같은 희망에 자신들의 온 몸을 던졌다.
이런 대명천지에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는 수 많은 어이 없는 사건들. 자신의 재테크를 위해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쓰리쿠션 신공을 발휘하며 마음껏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대통령과 그 밑에 빌어 붙어서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면 되지 이 세상 그까이거 뭐 별거 있냐며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충실한 똥개들, 저 소위 영혼없는 이명박의 팔들과 관료들에 대항해서 총 빼고, 칼 빼고 오직 맨 몸 하나만으로 싸우고 있는 저 사람들.
그래도 이들은 여지껏 우리에게 작은 승리를 안겨주며 희망을 꿈꾸게 해주었다. 정보에 대한 정확한 사실확인과 근거 자료 확보. 마구 널부러진 정보의 파편들을 기가 막히게 정리해서 내놓는 김총수의 논리 전개는 가히 천재라 할만하다. 그리고 이 남자가 제시하는 이론을 따라가기도 벅찬 듯 뒤쫓아가면서 정보를 줍고서는 그 논리의 정교함과 정확함에 혀를 내두른다는 기자들. 셀프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아직 못 내려오고 계시는 전직 서울 시장 그 분처럼, 김총수의 시나리오 대로 꼼짝없이 갇혀버리는 이명박의 아바타들. 이들은 마치 오직 영리한 머리 하나로 낡아 빠진 구식 무기와 농기구로 무장한 촌스럽기 이를데 없는 농촌의 필부들과 아낙네들을 이끌고 싸움터에 나가 일본군과 용감히 맞서 싸우는 독립군 같이 보인다.
그 옛날, 아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권력에 대들어 대던 그 잘난 호연지기의 인물들은 다 어디갔느뇨. 노무현이 대장으로 있던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이 아무리 이명박이 대장으로 있는 대한민국으로 바뀌었기로 서니, 이렇게나 처참하게 찌질이가 될 수 있는가. 주인님의 말이라면 부모라도 뜯어 먹을 기세다. 어떻게 이렇게 단체로 미쳐버릴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정부 조직의 대가리를 나라 팔아 먹는 조폭 졸개들로 박아 놓았다고 해도, 이렇게나 단체로 국가 헌법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버리는 일에 충실하게 봉사할 수 있단 말이냐.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의 관료들이 아니다. 나라 팔아 먹는데 충실한 똥개 역할을 하는 역적 간신배들일 뿐.
그 옛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런 마음으로 독립군들을 보면서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탈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온전한 한 국가로 인식하고, 그리고 대한민국을 우리가 자손대대로 살아갈 터전으로서 사랑하고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털끝 만큼이라도 있다면,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이렇게 무자비하게 대한민국을 능멸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칼부림질을 하는 나라 팔아 먹는 역적들에게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분노한다면, 분노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독립군 진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보수 진영도 아니고, 진보 진영도 아니고, 반이명박 진영도 아니다. 우리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독립군 진영 소속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 전쟁은 현재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참으로 영리하게 적들을 놀려 대면서, 앞장서서 당당히 싸우고 있는 저들, 자신들은 그저 잡놈들일 뿐이라고 말하는 저 사람들... 나꼼수를 ... 사랑하고, 존경한다. 도대체 우리나라를 송두리채 말아 먹으려는 역적 간신배들이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국민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날뛰는 이 미친 세상에 누가 잡놈이고, 누가 잡놈이 아니란 말이냐.
앞으로 김어준, 이 털보 독립군 대장의 생각을 따라갈 수는 없다해도 적어도 우리나라를 팔아 먹으려는 간신배들의 나팔소리에 홀려서 총구를 우리편에 들이대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기자와 김되지가 왜 이렇게 소모적인 일에 에너지를 빼앗기고,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말이다. 현재 이들이 하고 있는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이 있는가.
정신 차리자.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대산해서 피 튀기는 링위에 올라간 나꼼수를 우리 손으로 마녀사냥의 굿판으로 끌어 내렸다. 저들이 우리의 대장을 또 처참하게 갈기갈기 찟겨 발려서 짓밟는 꼴을 봐야 하는 상황으로 말려 들어가서는 안된다. 이렇게 멍청하게 잘난 척 하다가 노무현도 잃었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 아닌가. 그러고도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천민 중에 천민, 잡놈 중에 잡놈들이 바로 우리다. 이명박을 대장으로, 대통령으로 모시놓고는, 그 독재자에게 짓밟히면서 살기에 딱 맞는 수준의 족속들일 뿐이다. 그런가?
나꼼수가 사라지겠다고 선언한 그 때까지 저들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더 깊은 침잔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다. 보고 싶지 않고, 분노하면서도 권력의 폭력 앞에 쪼그라드는 자신의 모습에 그리고 썩어빠진 조직의 나사 하나만도 못한 더러운 내 인생, 열심히 살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또 치를 떨며 살아야 할지 모른다.
나꼼수는 귀찮다고, 절대로 싫다고 하겠지만, 그들은 현재 우리도 모르는 사이 끌려 들어간 독립 전투에서 우리를 이끄는 독립군 대장이 되었다. 우리는 한 때 노무현을 대장 자리에 앉힌 적이 있었다. 이제 잃어버린 대한민국을 찾아오기 위해서 우리는 나꼼수의 말 끝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독립을 되찾으려는 독립군이다. 고향이 어디던,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던 모두 독립군 진영 소속의 사람들일 뿐이다. 허름한 옷에 낡아 빠지고 초라한 구닥다리 농기구를 무기랍시고 하나씩 둘러 매고는 전투에 나선 농촌의 필부들이고, 혹은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도 치맛 자락에 열심히 돌을 실어 나르던 그 아낙네들이다.
김감퇴와 주키니 사건. 이번 사건은 저들의 간사한 말장난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공부 한번 제대로 징하게 한 셈치자.
<참조>
선동이란?
1. <다음> 어학 사전 : ① 남을 부추기어 어떤 사상을 갖게 하거나 행동을 하도록 조장함
② 부추겨 어떤 사상을 갖거나 행동을 하도록 조장하다
뭔 놈의 사전이 이따위냐. 이런 답은 버려라. 너무 안일하고 뜬 구름 잡는 설명이다.
2. <네이버> 어학 사전 : 문서나 언동으로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대중의 정서적 반응에 호소함으로써
그들을 행동에 동원하는 행위를 말한다 ( 선동 [煽動, agitation ] )
괜찮다. "선동"이라는 단어의 핵심 개념을 다 짚은 것 같다. 즉 선동은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하여, "대중의 정서적 반응"에 호소함으로써 그들을 "행동에 동원"하는 행위이다.
문제는 "대중의 정서적 반응"에 호소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설득과 다르지 않나 싶은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정부는 나꼼수가 우리를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꼼수 편인 내가 보기에는 정부가 그리고 소위 보수 언론이 우리를 "선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선동의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의 "정서적 반응"에 호소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서적 반응에 호소함"이란 말은 "객관적인 증거 혹은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성적인 논리 전개"를 내놓지 않고서, 대중의 감정적인 측면을 자극함으로써, 대중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려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증거도 없고, 근거도 없고, 상황에 따라 요리 조리 말 바꾸고, 아님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선동"을 하는 놈이라는 의미이다.
사춘기 아이들이 욱해서 한 국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관위에 디도스 공격이나 한다고 하거나, 집 안에 TV 만 꺼졌는데 집에 정전이 됐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전문가 모시고 증명해 보이겠다며 소리 높여 광고해대다가 스리슬쩍 조용히 덮어버리는 사람들. 자신이 BBK 설립했다고 자랑하는 동영상이 나왔는데도, 주어가 없으니 자신이 설립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소리를 창피한 줄도 모르고 당당히 하는 사람들. 북한이 남한 해상에 잠입해서 천암함을 폭발시키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는 사람들. 인간어뢰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사람들. 북한에서 농협을 해킹해서 특정 사람들의 거래 내역만 골라서 삭제하고 도망갔다는 사람들.
이들의 거짓말과 어이없는 횡설수설을 일일이 다 언급해야 하나. 도대체 누가 "선동"이라는 기술이 왜 필요한거냐? 앞으로 나꼼수에게 "선동"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지 말라. 나꼼수가 선동이 아닌 이유? 위와 같이 "선동" 아니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나꼼수에 대해서 욕을 하려면 나꼼수 방송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좀 듣고서나 떠들어 대란 말이다.
우리가 한 때 독재정권의 '선동'에 놀아난 적이 있었다. 그 때 우리는 뭘 몰랐다. 그리고 사실 식민지를 갓 벗어난 신생 국가, 특히 제대로 자리도 잡기 전에 군사독재가 권력을 장악한 나라에서는 이런 선동 정치가 횡행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왜냐하면 시중 잡배만도 못한 이들이 독재정권의 권력을 등에 업고 아무리 폭력을 휘두른다고 해도, 우리도 그들과 같은 수준의 바보가 될 의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The spread of a new sort of business in the emerging world will cause increasing problems
새로운 신흥개발국가 유형의 기업이 확산되는 것은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다
Jan 21st 2012 | from the print edition
OVER the past 15 years striking corporate headquarters have transformed the great cities of the emerging world. China Central Television’s building resembles a giant alien marching across Beijing’s skyline; the 88-storey Petronas Towers, home to Malaysia’s oil company, soar above Kuala Lumpur; the gleaming office of VTB, a banking powerhouse, sits at the heart of Moscow’s new financial district. These are all monuments to the rise of a new kind of hybrid corporation, backed by the state but behaving like a private-sector multinational.
지난 15년간 기업의 경이로운 본사 건물들이 신흥개발국 대도시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중국중앙TV 건물은 베이징 하늘 위로 날아가는 거대한 외계인처럼 보인다. 말레이지아 석유 회사 본사인 88층짜리 Petronas Towers는 쿠알라 룸프르의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은행업의 큰 손 VTB의 반짝이는 사무실은 모스코바에 새로 생긴 금융가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국가가 뒤를 받쳐주고 있는 기업의 건물이지만 마치 민간 영역의 다국적기업과 같이 행동하는 새로운 종류의 잡종 기업이 대두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건물들이다.
State-directed capitalism is not a new idea: witness the East India Company. But as our special report this week points out, it has undergone a dramatic revival. In the 1990s most state-owned companies were little more than government departments in emerging markets; the assumption was that, as the economy matured, the government would close or privatise them. Yet they show no signs of relinquishing the commanding heights, whether in major industries (the world’s ten biggest oil-and-gas firms, measured by reserves, are all state-owned) or major markets (state-backed companies account for 80% of the value of China’s stockmarket and 62% of Russia’s). And they are on the offensive. Look at almost any new industry and a giant is emerging: China Mobile, for example, has 600m customers. State-backed firms accounted for a third of the emerging world’s foreign direct investment in 2003-10.
영국의 동인도 회사를 생각해보면,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다.하지만 이번주 본지의 특별 보고서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런 유형의 기업들이 요즘 극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1990년대 대부분의 국영기업들은 신흥시장에서 정부 부처의 일부에 다름 없었다. 이런 기업들은 경제가 성숙해지면 문을 닫거나 혹은 민영화되리라는 것이 그 전제였다. 하지만 ( 비축자금면에서 세계 10대 석유.가스 회사들은 모두 국영인) 주요 산업부문에서건 혹은 (국가가 뒤를 받쳐주는 기업들이 중국의 주식시장 가치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러시아에서는 주식시장가치의 62%를 차지하고 있는) 주요 시장에서건, 국가주도 자본주의의 위세가 꺽일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주도 자본주의는 공격적이다.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도 한 거대 기업이 대두되고 있다. 예를 들면 China Mobile의 소비자 수는 6억명이다. 신흥개발국가들의 외국에 대한 직접 투자 중 3분의 1을 이런 국가주도 자본주의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With the West in a funk and emerging markets flourishing, the Chinese no longer see state-directed firms as a way-station on the road to liberal capitalism; rather, they see it as a sustainable model. They think they have redesigned capitalism to make it work better, and a growing number of emerging-world leaders agree with them. The Brazilian government, which embraced privatisation in the 1990s, is now interfering with the likes of Vale and Petrobras, and compelling smaller companies to merge to form national champions. South Africa is also flirting with the model.
서구 시장은 움츠러들고 있는데 신흥 시장은 번성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더 이상 국가주도기업들을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가는 도중의 중간 기착지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속가능한 모델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더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다시 설계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점점 더 많은 신흥개발국가의 지도자들도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 1990년대 민영화에 착수했던 브라질 정부는 이제 Vale and Petrobras와 같은 기업들을 간섭하고, 중소기업들이 합병을 해서 국가 대표 기업이 되도록 강요하고 있다.
This development raises two questions. How successful is the model? And what are its consequences—both in, and beyond, emerging markets?
이런 현상은 두가지 의문점을 야기시킨다. 이런 모델은 얼마나 성공적인가? 이 모델은 신흥시장 내에서 그리고 신흥시장을 넘어서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The law of diminishing returns
수확체감의 법칙
State capitalism’s supporters argue that it can provide stability as well as growth. Russia’s wild privatisation under Boris Yeltsin in the 1990s alarmed many emerging countries and encouraged the view that governments can mitigate the strains that capitalism and globalisation cause by providing not just the hard infrastructure of roads and bridges but also the soft infrastructure of flagship corporations.
국가자본주의 지지자들은 국가자본주의가 경제성장 뿐만 아니라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보리스 옐친 정권하에서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었던 민영화는 많은 신흥국가들에게 경고를 주었다. 그리고 정부가 단지 도로와 다리와 같은 건설 사회기반시설 뿐만 아니라 국가 대표 기업이라는 조직 사회 기반시설을 제공함으로써 자본주의와 세계화가 야기하는 긴장감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견해가 힘을 얻게 되었다.
So Lee Kuan Yew’s government in Singapore, an early exponent of this idea, let in foreign firms and embraced Western management ideas, but also owned chunks of companies. The leading practitioner is now China. The tight connection between its government and business will no doubt be on display when the global elite gathers in the Swiss resort of Davos next week. Among Westerners there, government delegates often take the opposite view to those from the private sector: Chinese delegates from both sides tend to have the same point of view, and even the same patriotic talking-points.
일찍이 이런 생각을 주장했던 싱가폴의 리콴유 정부를 보면, 서구의 관리 아이디어를 수용하면서도 수 많은 기업들을 정부가 소유했다. 현재는 이런 생각을 앞서서 실천하고 있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다음 주 스위스의 한 휴양지 다보스에서 세계의 엘리트들이 모여서, 이러한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접촉에 대해 논의를 할 것이다. 모임에 참석하는 서구 지식인들 중에서, 정부측 대표로 온 사람들은 종종 민간 부문 대표로 온 사람들의 견해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중국 대표들은 정부 대표나 민간 부문 대표나 할 것 없이 모두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똑같이 애국적인 논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The new model bears little resemblance to the disastrous spate of nationalisations in Britain and elsewhere half a century ago. China’s infrastructure companies win contracts the world over. The best national champions are outward-looking, acquiring skills by listing on foreign exchanges and taking over foreign companies. And governments are selective in their corporate holdings. Overall, the Chinese state has loosened its grip on the economy: its bureaucrats concentrate on industries where they can make a difference.
이러한 새로운 모델은 반세기전 영국과 다른 나라에서 빈발하게 일어났던 국영화로 인한 재앙과는 닮은 점이 별로 없다. 중국의 하부기반조직이 된 기업들이 전세계적으로 계약을 따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국가 대표 기업들이 국외를 눈을 돌려서, 외국의 주식시장에 상장하고, 외국 기업들을 합병함으로써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중국은 경제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고 있지만, 정부 관료들은 변화를 일으킬 만큼 영향력이 큰 기업들에 집중한다.
. spate : a fast flow, rush, or outpouring
Let a thousand mobiles bloom
수 많은 핸드폰 회사가 사업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Yet a close look at the model shows its weaknesses. When the government favours one lot of companies, the others suffer. In 2009 China Mobile and another state giant, China National Petroleum Corporation, made profits of $33 billion—more than China’s 500 most profitable private companies combined. State giants soak up capital and talent that might have been used better by private companies. Studies show that state companies use capital less efficiently than private ones, and grow more slowly. In many countries the coddled state giants are pouring money into fancy towers at a time when entrepreneurs are struggling to raise capital.
하지만 이런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그 단점이 보인다. 정부가 많은 기업들 중 하나를 선호하면 다른 기업들은 피해를 입게 된다. 2009년 China Mobile 과 또 다른 국가 주도 대기업인 China Naitonal Petroleum Corportaiton은 330억 달러의 이윤을 얻었는데, 이것은 중국내 가장 영업 성적이 좋은 500개의 민영 기업들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액수이다. 국영 대기업들은 사기업들이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자본과 재능을 다 빨아들이고 있다. 국영 기업들이 민간 기업들보다 자본 이용에 있어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보고들도 있다.
Those costs are likely to rise. State companies are good at copying others, partly because they can use the government’s clout to get hold of their technology; but as they have to produce ideas of their own they will become less competitive. State-owned companies make a few big bets rather than lots of small ones; the world’s great centres of innovation are usually networks of small start-ups.
이러한 피해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영 기업들은 다른 기업 모방을 잘한다. 다른 기업의 기술을 손에 쥐기 위해서 정부의 영향력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런 기업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생산해야 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다. 국영 기업들은 작은 규모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만드는 것 보다 규모가 큰 소수의 아이디어에 집중한다. 그래서 중소 신생 기업에서 세계적으로 큰 혁신이 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Nor does the model guarantee stability. State capitalism works well only when directed by a competent state. Many Asian countries have a strong mandarin culture; South Africa and Brazil do not. Coal India is hardly an advertisement for efficiency (see article). And everywhere state capitalism favours well-connected insiders over innovative outsiders. In China highly educated princelings have taken the spoils. In Russia a clique of “bureaugarchs”, often former KGB officials, dominate both the Kremlin and business. Thus the model produces cronyism, inequality and eventually discontent—as the Mubaraks’ brand of state capitalism did in Egypt.
(국가자본주의) 모델은 안정성도 보증하지 못한다. 오로지 능력있는 국가(관료)에 의해서 지휘받을 때에만 작동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관료 집단의 힘이 강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남아프리카와 브라질은 그런 강한 관료문화가 없다. (그렇다고) Coal India 회사 같은 경우 효율성 면에서 좋은 예가 아니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국가자본주의는 혁신적인 외부 기업들(사기업들 - 역자 주) 보다 국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들(국가주도 대기업들 - 역자 주) 을 선호한다. 그래서 중국에서 교육 수준이 높은 작은 왕들(이런 기업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 역자 주)이 이익을 얻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종종 전직 KGB 관료들인 '관료' 패거리들이 정치 영역과 사업 영역을 둘 다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자본주의 모델은 불평등과 결국은 (국민의) 원성을 사는 정실주의을 만들어낸다. 이집트에서 무라바크의 국가자본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princelling : a petty or insignificant prince who rules some unimportant principality
Rising powers have always used the state to kick-start growth: think of Japan and South Korea in the 1950s or Germany in the 1870s or even the United States after the war of independence. But these countries have, over time, invariably found that the system has limits. The Chinese of all people should understand that the best way to learn from history is to look at its long sweep.
신흥개발국들은 항상 경제를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 국가권력을 사용해왔다. 1950년대의 일본과 남한 혹은 1870년대의 독일 혹은 심지어 독립전쟁 당시의 미국을 생각해 보라. 하지만 이런 국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필연적으로 이런 체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인민들의 국가인 중국이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역사의 물결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But it may take many years for the model’s weaknesses to become obvious; and, in the meantime, it is likely to cause all sorts of problems. Investors in emerging markets, for instance, need to watch out. Some may be taking a punt on governments as much as companies. State-capitalist governments can be capricious, with scant regard for minority shareholders. Others may find their subsidiaries or joint ventures in emerging markets pitted against state-backed favourites.
하지만 이런 모델의 문제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이것은 온갖 종류의 문제를 야기시킬 것 같다. 예를 들면 신흥시장의 투자자들이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만큼 정부에 투자할 것이다. 국가자본주의를 도입한 정부들은 소액 주주들에 대한 배려를 별로 하지 않고 변덕을 부릴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흥시장에 세웠던 자회사들 혹은 신생 합자회사들이 국가주도 기업들에게 대항해서 싸워야 할 상황에 처할 수 있다.
. capricious : subject to whim; impulsive and unpredictable
. punt : to bet
Another concern is the impact of the model on the global trading system—which, at a time when the likely Republican nominee for president wants to declare China a currency manipulator on his first day of office, is already at risk. Ensuring that trade is fair is harder when some companies enjoy the support, overt or covert, of a national government. Western politicians are beginning to lose patience with state-capitalist powers that rig the system in favour of their own companies.
또 다른 염려되는 점은 이런 기업 모델이 이미 위험에 처해 있는 전세계 무역 시스템에 미칠 영향이다. 마침 공화당의 대선 지명자가 될 것으로 보이는 공화당 예비선거 후보자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명하려 하고 있다. 어떤 기업들이 자국의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다면 공정한 무역을 보증하기는 더 힘들어진다. 자국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경제 시스템 조작을 서구 사회의 정치인들이 인내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 rig : To manipulate dishonestly for personal gain
For emerging countries wanting to make their mark on the world, state capitalism has an obvious appeal. It gives them the clout that private-sector companies would take years to build. But its dangers outweigh its advantages. Both for their own sake, and in the interests of world trade, the practitioners of state capitalism need to start unwinding their huge holdings in favoured companies and handing them over to private investors. If these companies are as good as they boast they are, then they no longer need the crutch of state support.
세계 시장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길 원하는 신흥 개발국가들에게 국가자본주의는 확실히 매력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자본주의 모델은 민간 영역의 사기업들이 수년이 걸려야 이룰 수 있는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위험은 이점보다 더 많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그리고 세계 무역을 위해서도, 국가자본주의를 시행하는 국가들은 정부가 선호하는 국가들에 대한 과도한 간섭을 거두고, 민간 투자자들에게 넘겨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런 기업들이 자신들이 자랑하는 것만큼 좋다면, 그러면 더 이상 국가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